자는 치홍(致洪), 호는 초운(樵云). 경상북도 금릉(지금의 경상북도 김천) 출신.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듬해 3월 허위(許蔿)·강일선(姜馹善) 등과 함께 김산(金山)에서 거의하였으나, 관군에게 패하였다.
거병실패 후 청나라로 청병하러 가던 중 의주관찰사에게 구금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여중룡(呂中龍)·우용택(禹龍澤) 등과 함께 일제의 침략적 행위를 규탄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탁월한 문장력과 무장항쟁을 통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항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다가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겪었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