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천(永川). 아버지는 이응(李膺)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全州崔氏)로 판서 최병례(崔丙禮)의 딸이다.
1405년(태종 5) 음직(蔭職)으로 벼슬에 올라 1417년 무과에 급제, 1418년 의용위절제사(義勇衛節制使)·동지총제가 되었고 1419년(세종 1) 우군절제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경상좌도병마절제사·중군도총제·좌군도총제·충청도병마도절제사·삼군도진무(三軍都鎭撫)·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등을 역임하였다.
1419년 우군절제사로 이종무(李從茂)·우박(禹博)·박초(朴礎) 등과 함께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 여러 장수들은 모두 패하였으나 이순몽은 김효성(金孝誠)과 함께 대전과를 거두어, 대마도주 도도웅이(都都熊耳)가 항복하고 수호를 요청하였다.
1425년 진하사(陳賀使)로 중국에 들어가 선종(宣宗)이 즉위함을 축하하였다. 1433년 중군절제사가 되어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인 이만주(李滿住)를 토벌하여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자, 세종은 노비와 의화(衣靴)를 내려주었고 총애가 극진하였다.
1434년 경상도도절제사, 1447년 영중추원사를 지냈다. 영천의 삼현사(三賢祠)와 숭렬당(崇烈堂)에 봉향되었다. 시호는 위양(威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