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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李和)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영의정부사를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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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개국공신녹권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전기 영의정부사를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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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이요정(二樂亭). 이성계의 이복동생이다. 이자춘(李子春)과 비첩 김씨 사이에 태어났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에 참여하여 회군공신에 봉해지고, 1392년(공양왕 4) 이방원이 정몽주를 격살하는 데 가담하였다. 그 해 이성계를 추대하는 데 참여하여 개국공신 1등에 서훈되고 의안군(宜安君)에 봉해졌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운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서훈되고,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에 다시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2등에 서훈되었다.
그는 전후 4차에 걸쳐 공신에 피봉되고, 도합 570결(結)의 공신전을 받아 조선 초기 공신 중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였다.
1407년(태종 7) 7월에 영의정부사로 임명되자,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형제에 대하여 죄줄 것을 청하는 상소로 민씨 형제를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만들었다.
당시 기공친(朞功親: 기복·대공복·소공복에 해당하는 친척)·대공친(大功親: 종형제 자매·중손·중손녀 및 질부와 남편의 조부모 또는 백숙부모 및 질부들의 겨레붙이) 이상의 종친은 관직 활동이 금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친으로서 의정부찬성사를 거쳐 영의정부사라는 최고 관직에 임명된 것은, 태종 때 태조의 직계가 아닌 왕족은 왕위계승의 권외로 밀려나는 대신, 그들을 일반문무관처럼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죽은 뒤 태조의 사당에 함께 모셔졌다. 시호는 양소(襄昭)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한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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