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학교 ()

상해 인성학교 전경
상해 인성학교 전경
근대사
단체
1917년상해(上海)에서 설립되었던 초등과정의 학교.
정의
1917년상해(上海)에서 설립되었던 초등과정의 학교.
개설

1917년 2월 한인거류민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교회 소속 사립으로 설립되었다가 1919년 6월 교민친목회에서 인수해 다시 1920년 의무교육실시를 목표로 한 모범학교로 상해한인거류민단 소속 공립학교가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여운형(呂運亨)의 동생 여운홍(呂運弘)이 1920년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학교유지·발전을 위한 기금 모금을 시작하였다. 교육 목적은 학생들에게 지(智)·덕(德)·체(體)의 함양에 있었다. 가장 치중하였던 교과목은 한국어와 한국역사로 한국혼을 불어넣어 주려 했으며, 그 밖에 한문·외국어 등을 교육하였다.

교육 방법은 자유덕성(自由德性)을 길러주고 민족적 원기를 배양하기 위한 자연교육의 방침을 지향하였다. 교과서 편집방침은 민족의 장래와 시세에 적당한 내용을 골라 자체에서 편집해서, 사용하였다. 교원은 국내의 전문학교 또는 중등학교 이상 졸업한 교사를 초빙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 산하에 들어가, 학교 내에 보습과(補習科)를 설치해 소학교 졸업생 및 국내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 중국상급학교에 입학하기 전 영어·한문·산학 등을 교육시켰다. 1924년에는 보습과를 발전시켜 강습소로 개칭하였다. 또, 1932년에는 유치원과 야간부도 설치하였다.

1924년에는 학교교사 건축을 위해 상해교민단 학무위원회를 개최하고 학교 건축을 위한 성금모금 통지문을 국내외 인사들에게 발송, 건축비를 모금하여 1926년까지 사용하던 교사를 이전했으며, 1942년 다시 교사를 이전하였다.

학생수는 1926년 현재 졸업생 100여 명, 재학생 50명이었으며, 1945년 이후에도 존속했으나 점차 학생수가 줄어 1975년 폐쇄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학교는 지·덕·체 삼육(三育) 및 사회공헌의 훈련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이 학교 학생 및 기타 상해의 각 학교 재학생을 망라, 상해소년회(上海少年會)를 조직해 토론회 등을 실시해 장래 민족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상해에 거류하던 한국인 자제의 초등교육을 전담한 가장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 3(국사편찬위원회, 1973)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김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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