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독립의지를 고취하고 이어가기 위하여 발간한 신문이다. 1919년 4월 1일 중앙고등보통학교 출신인 유연화를 비롯한 백광필(白光弼)·최석인(崔碩寅) 등이 등사판으로 찍어낸 3·1운동 전위투쟁지이다. 이들은 서울의 각 동네를 나누어 집집마다 이 신문을 집어넣고 다녔다.
당시 이러한 3·1운동 전위투쟁지들은 보성고등보통학교와 배재고등보통학교·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거의 도맡아 배포하였다. 이들 학생들은 1919년 8월「출판법」 위반으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1년 6개월의 실형을 살고 1921년 2월 28일 석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뒤 신문발행은 계속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