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의 장수 정기룡의 묘소 및 유적으로,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금흔리에 위치한다. 1974년 12월 10일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기룡(鄭起龍, 1562∼1622)의 본관은 곤양(昆陽), 호는 매헌(梅軒)으로 곤양정씨의 시조가 된다. 그는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하여 신립(申砬) 휘하에 들어가 훈련원 봉사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경(趙儆)과 김성일(金誠一) 휘하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으며, 특히 상주성 탈환 및 경주 · 울산 등의 여러 성을 수복하는 등 혁혁한 공적을 이루었다. 경상우도병마절도사상호군(慶尙右道兵馬節度使上護軍) 등을 역임하고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三道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로 1622년(광해군 14) 진중(陣中)에서 작고하였다.
유적은 충렬사 · 신도비 · 묘소가 있다. 충렬사는 장군의 사당으로 원래는 정면 3간의 목조 건물이었다. 1978년 정부의 호국선현유적사업(護國先賢遺蹟事業)으로 사당을 재건하고, 내외 삼문 · 전시실 · 관리실 등을 신축하는 등 주위를 정화하여 1979년에 사업을 완료하였다.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이세재(李世載)가 글을 썼으며, 김수용(金壽勇)이 전(篆)하였다. 전체 높이 370㎝, 폭 130㎝, 두께 42㎝으로,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추었다. 특히 이수의 운룡문(雲龍文)이나 귀부의 용린(龍鱗) · 용수(龍首) · 구갑(龜甲) 등의 조각수법이 매우 걸출하다.
묘소에는 묘비를 비롯한 석물이 고루 갖추어져 있어 조선 전기부터 이어지는 묘장 제도(墓葬制度)의 좋은 예가 된다. 봉분은 단분(單墳)이고 호석은 없다. 묘표는 종 모양 삿갓머리를 한 것이 독특하며 혼유석 밑에는 석축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