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룡 장군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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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정기룡 장군 유적 /  충의사
정기룡 장군 유적 / 충의사
조선시대사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정기룡 관련 유적일원.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정기룡장군유적(鄭起龍將軍遺蹟)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기념물(1974년 12월 10일 지정)
소재지
경북 상주시 사벌면 충의로 230 충의사, 52필 (금흔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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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정기룡 관련 유적일원.
개설

임진왜란 때의 장수 정기룡의 묘소 및 유적으로,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금흔리에 위치한다. 1974년 12월 10일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내용

정기룡(鄭起龍, 1562∼1622)의 본관은 곤양(昆陽), 호는 매헌(梅軒)으로 곤양정씨의 시조가 된다. 그는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하여 신립(申砬) 휘하에 들어가 훈련원 봉사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경(趙儆)과 김성일(金誠一) 휘하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으며, 특히 상주성 탈환 및 경주 · 울산 등의 여러 성을 수복하는 등 혁혁한 공적을 이루었다. 경상우도병마절도사상호군(慶尙右道兵馬節度使上護軍) 등을 역임하고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三道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로 1622년(광해군 14) 진중(陣中)에서 작고하였다.

유적은 충렬사 · 신도비 · 묘소가 있다. 충렬사는 장군의 사당으로 원래는 정면 3간의 목조 건물이었다. 1978년 정부의 호국선현유적사업(護國先賢遺蹟事業)으로 사당을 재건하고, 내외 삼문 · 전시실 · 관리실 등을 신축하는 등 주위를 정화하여 1979년에 사업을 완료하였다.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이세재(李世載)가 글을 썼으며, 김수용(金壽勇)이 전(篆)하였다. 전체 높이 370㎝, 폭 130㎝, 두께 42㎝으로,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추었다. 특히 이수의 운룡문(雲龍文)이나 귀부의 용린(龍鱗) · 용수(龍首) · 구갑(龜甲) 등의 조각수법이 매우 걸출하다.

묘소에는 묘비를 비롯한 석물이 고루 갖추어져 있어 조선 전기부터 이어지는 묘장 제도(墓葬制度)의 좋은 예가 된다. 봉분은 단분(單墳)이고 호석은 없다. 묘표는 종 모양 삿갓머리를 한 것이 독특하며 혼유석 밑에는 석축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매헌실기(梅軒實記)』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동야휘집(東夜彙集)』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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