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창진(昌辰). 영암 출신. 아버지는 훈련참군 정응정(鄭應禎)이다.
1570년(선조 3) 28세로 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봉사·금갑도수군권관(金甲島水軍權管)·거산찰방(居山察訪)을 거쳐 웅천현감 등을 지냈으나 성격이 강직하고 정의를 지켰기 때문에 미움을 받아 몇 해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1591년 녹도만호(鹿島萬戶)가 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군관 송희립(宋希立)과 함께 결사적으로 출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뒤 옥포(玉浦)·당포(唐浦)·한산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마침내 9월의 부산포해전에서 우부장(右部將)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604년에 병조참판에, 1796년(정조 20)에 병조판서 겸 의금부훈련원사로 추증되었다. 흥양 쌍충사(雙忠祠)에 이대원(李大源)과 함께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