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정한모(鄭漢模)

현대문학인물

 해방 이후 『카오스의 사족』, 『여백을 위한 서정』, 『원점에 서서』 등을 저술한 시인.   국문학자.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정한모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해방 이후 『카오스의 사족』, 『여백을 위한 서정』, 『원점에 서서』 등을 저술한 시인.국문학자.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충청남도 부여 출생.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나니와상업학교[難波商業學校]를 졸업한 뒤,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휘문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8년 동덕여자대학 교수로 부임하였고, 1966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88년 퇴직 때까지 재직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활동사항
문단 등단은 8·15광복 직후 김윤성(金潤成)·구경서(具慶書) 등과 함께 동인지 『백맥(白脈)』을 발간함으로써 이루어졌으나, 본격적인 활동은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선된 뒤부터이다. 1958년 제1시집 『카오스의 사족(蛇足)』에 이어 다음해 제2시집 『여백을 위한 서정』을 발간하였다.
이 무렵 그의 시의 주조가 되고 있는 것은 바람이나 꽃·계절·산이나 시내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가운데 따뜻한 인간의 눈길이나 정을 곁들여서 읊조린 정신자세로 시 「바람 속에서」는 이러한 경우의 좋은 보기로 생각되는 작품이다. 그 뒤 그의 시는 일상적인 생활에 평범한 인간의 정을 실어 읊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러한 세계를 담은 작품을 수록한 것이 『아가의 방』(1970)·『새벽』(1975)·『사랑 시편(詩篇)』(1983)·『아가의 방 별사(別詞)』(1983)·『나비의 여행』(1983)·『원점에 서서』(1989) 등이다.
시인으로서의 활약 이외에도 대학 교수로서 문학 연구에 끼친 공적으로는, 1956년 5월부터 12월에 걸쳐 『문학예술』에 발표한 「문체로 본 동인(東仁)과 효석(孝石)」, 1964년 12월호 『문학춘추(文學春秋)』를 통하여 발표한 「김영랑론(金永郞論)」 등이 있다.
이들 문학 연구와 시론에 해당되는 글들은 뒤에 『현대작가연구』(1959)·『한국현대시학사』(1974) 등으로 공간되었다.
또하나의 뚜렷한 발자취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 교육자로서, 그리고 문화행정가로서의 단면이다. 교육분야에서 그는 방송통신대학이 설립, 운영되자 학장으로 취임하여 기구확충, 교과목 내용 개편, 강의 운영의 개선에 힘썼다. 한국시인협회에도 관계하여 한때 사무국장을 맡았고, 이어 그 회장으로 추대된 바 있다.
또한 제3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하여 문학예술 지원사업을 관장한 바 있다. 예술원 정회원,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 문화공보부 장관이 되었다. 장관 퇴임 후에는 잡지간행윤리위원회 이사장으로 일한 바 있다.
특히, 문화공보부 장관 재임 때에는 그 동안 남쪽에서 작품들의 공간과 논의가 금지되어온 월북 및 납북 문학예술인들을 해금한 「납·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를 입안, 공포하여, 남쪽에서나마 한국 문단의 벽을 제거하는 데 공헌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한국시인협회상(1971)·서울특별시문화상(1983)·대한민국예술원상(시부문, 1987)을 수상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정한모의 문학과 인간  (정한모선생추모문집간행위원회, 시와 시학사, 1992)

  • 「휴머니즘 또는 미래지향의 역사 의식: 정한모론」(김시태,『현대문학』345,1983.9.)

  • 「자아와 세계와의 화해」(오세영,『현대문학』293,1979.5.)

  • 「원초적인 것에의 집념」(이건청,『현대시학』62,1974.5.)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개정 (1997년)
김용직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