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역인(譯人)으로 재상이 된 조인규(趙仁規)의 아들이다.
충렬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직보문서(直寶文署)에 임용되었다.
그 뒤, 1297년(충렬왕 23) 우승지에 이르고, 이듬해 충선왕이 잠시 즉위한 동안 광정승지(光政承旨)·전객경(典客卿)이 되었으나, 같은 해 아버지 조인규가 조비(趙妃: 충선왕비) 무옥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압송되었을 때 동생들과 함께 동행하여 8년간을 수종(隨從)하였다.
조인규가 방환(放還)되자 귀국하여 1306년 좌승지에 복직되고, 이듬해 밀직부사가 되어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1308년 동지밀직(同知密直)으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원나라에 파견되었는데, 이 때 장녀를 원나라의 총상(寵相)이며 뒤에 안길왕(安吉王)에 봉해진 야아길니(也兒吉尼)와 혼인시켰다.
이듬해 귀국하면서 원나라로부터 회원대장군 고려국부원수(懷遠大將軍高麗國副元帥)의 직을 받았다. 귀국한 뒤 대사헌검교찬성사(大司憲檢校贊成事)에 제수되고 평양군(平壤君)에 봉해졌으며,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거쳐 삼사사(三司事)에 올랐다. 시호는 장민(蔣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