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직교(直敎), 호는 월고(月皋). 경상남도 진주 출신. 아버지는 동몽교관에 증직된 조광식(趙匡植)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김석신(金錫信)의 딸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83년(고종 20) 선공감감역에 제수되었고, 1902년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에 올랐다. 성리학적 처지에서 기정진의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을 적극 지지하여 많은 연구를 거쳐 기정진에게 질문하자, 기정진은 81세 때 이에 대한 답설로 「외필(猥筆)」 1편을 지었는데, 그 뒤 간재학파(艮齋學派)와 연재학파(淵齋學派)로부터 성리학의 논쟁이 되기도 하였다.
월봉산(月峰山) 밑에 취수정사(取水精舍)를 짓고 후진 교육에 전념하면서 최익현(崔益鉉)·정재규(鄭載圭)·기우만(奇宇萬) 등과 교유하였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한말의 급변하는 과정에서 유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하여 「부정척사론(扶正斥邪論)」을 지어 외세의 압력에 저항하였다.
시와 문장이 뛰어났다. 장성의 고산서원(高山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월고문집(月皋文集)』 20권 10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