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경장(景章). 조눌(趙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과 조지유(趙之柔)이고, 아버지는 조상우(趙相禹)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강주(姜주)의 딸이다.
1665년(현종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67년 전적(典籍)에 이어 사헌부감찰·공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을 거쳐, 호조·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그 뒤 1669년 연기현감에 임명되고, 이듬해 병조좌랑을 거쳐, 1671년 예조좌랑,
이듬해 문겸(文兼)에 제수되고, 1673년 병조좌랑이 되었다. 1673년 병조정랑이 되고, 이듬해 사헌부의 지평(持平)·장령(掌令)을 거쳐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가 되었다. 1675년 옥천군수가 되고, 이어 1679년 성균관직장(成均館直長)·해미현감을 지냈다.
이듬해 장령으로 소환되었으나 병으로 교체되었다. 1681년 다시 사예에 임명되고, 이듬해 봉상시부정·장악원정을 거쳐 사헌부에 등용되었으나, 병으로 50세에 죽었다.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