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우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정언, 대구부사, 예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효자.
이칭
순경(舜卿)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창녕(昌寧)
주요 관직
대구부사|예천군수
정의
조선전기 정언, 대구부사, 예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효자.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순경(舜卿). 조상명(曺尙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경무(曺敬武)이고, 아버지는 군수 조말손(曺末孫)이며, 어머니는 김한계(金漢啓)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사옹원정을 지냈으며, 연산군 초기에는 성균관전적으로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1498년(연산군 4) 정언을 지냈으나 뒤에 연산군의 학정에 불만하여 관직을 사퇴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정세가 바뀌자 다시 기용되어 대구부사로 나갔다. 이어 1519년(중종 14) 예천군수를 지냈다.

재임 중 선정으로 이름이 높아 청백리에 녹선되고, 뒤에 송덕비가 세워졌다. 효행이 뛰어나 왕으로부터 『소학』을 하사받았으며, 55세에 어머니의 봉양을 위하여 사직하고 70세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애통 끝에 죽었다.

참고문헌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집필자
윤용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