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충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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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문하시랑평장사, 판서경유수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이칭
시호
정간(貞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036년(정종 2)
출생지
충청북도 음성
주요 관직
판서경유수사(判西京留守事)|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平章事)
관련 사건
김치양(金致陽)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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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에, 문하시랑평장사, 판서경유수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북도 음성 출신으로 추정된다.

목종 때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었다. 1009년(목종 12) 왕이 병중에 있을 때, 김치양(金致陽)이 천추태후(千秋太后)와 사통해 얻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역모를 꾸미자 왕명으로 중추원사(中樞院使) 최항(崔沆) 등과 함께 대량원군 왕순(大良院君 王詢: 뒤의 현종)을 영입하였다.

현종이 즉위하자 직중대(直中臺)가 되었고, 이어 이부시랑 겸 좌간의대부(吏部侍郎兼左諫議大夫)를 지냈다. 1011년(현종 2) 거란이 침입하자 왕을 호종해 나주로 피난했고, 거란이 퇴거한 뒤 비서감(祕書監)을 거쳐 중추사(中樞使)에 올랐다. 이듬해 예부상서(禮部尙書)·중추원사가 되고, 그 해 사신으로 거란에 다녀왔다.

1016년 예부상서 좌산기상시 중추사(禮部尙書左散騎常侍中樞使)를 거쳐 1018년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에 올랐다. 이듬해 추충진절위사공신(推忠盡節衛社功臣)이 되고 제양현개국남(濟陽縣開國男)에 봉해졌다. 이 때 왕에게 아뢰어 부모의 나이가 80 이상이 된 군사는 병역을 면하여 취양(就養)하게 하고, 부모의 나이가 70이 넘고 다른 형제가 없는 문무관은 외직에 보(補)하지 말 것이며, 그 부모에게 병이 있으면 200일의 휴가를 주어 보살피게 하였다.

1021년 검교태위(檢校太尉)에 올라 제양현개국자(濟陽縣開國子)에 봉해지고, 보국공신(輔國功臣)이 더해졌다. 1022년 내사시랑평장사 겸 서경유수(內史侍郎平章事兼西京留守)가 되고, 이듬해 태자소사(太子少師), 1025년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를 역임하였다.

1027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에 승진되었으며, 1030년 판서경유수사(判西京留守事)가 되었다가 이듬해 병으로 치사(致仕)하였다.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으며,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김치양난의 성격 고려초 서경세력의 정치적 추이와 관련하여」(이태진, 『한국사연구』17, 1977)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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