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도』는 1834년(순조 34)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전국 지도로, 2008년 12월 22일 보물로 3점의 청구도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보물, 2008년 지정), 영남대학교 도서관 소장본(보물, 2008년 지정),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보물, 2008년 지정)이 각각 지정되었다.
채색필사본이나 흑백필사본이며, 건곤(乾坤) 2책으로 되어 있다. 이본(異本)으로는 『청구요람(靑邱要覽)』이 있다. 대축척의 지도로 건곤 두책을 상하로 연결시키면 전국도가 된다.
전국을 남북으로 29층, 동서로 22판으로 구분하여 방안 눈금으로 나누어 그렸다. 방안 하나는 남북이 100리, 동서가 70리가 되도록 구분하였다. 실제 지도의 크기는 가로가 17.5㎝, 세로 25㎝이므로, 조선시대 10리는 4㎞가 아니라 약 5.4㎞임을 감안하여 지도의 축척을 계산하면 21만 6000분의 1이 된다.
책머리에는 최한기(崔漢綺)의 서문이 있는데 서문에서 그는 김정호와 친구임을 밝혔고 김정호가 『청구도』를 어떻게 제작했음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어 작자 자신이 만든 범례를 수록하였는데, 「청구도」의 제작 과정을 소상히 밝혔다.또한『청구도』가 종래의 방괘법에서 벗어나 평환법(平圜法)을 쓰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방괘법은 사정(四正)과 사우(四隅)의 거리가 일치하지 않아서 지도의 정확성을 기하기가 어렵다. 이에 비해 평환법을 쓰면 지도상의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도식(地圖式)을 그려 설명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수입한 『기하원본(幾何原本)』에서 배워온 확대 축소법을 그림 그려 설명하면서 청구도가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제작했음을 밝혔다.
다음으로는 본조팔도주현도총목(本朝八道州縣圖總目)을 수록하여 청구도의 색인 역할을 하게 하였고, 「도성전도(都城全圖)」를 머릿 부분에 수록하여 서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궁궐과 종묘가 있는 도성이 한 나라의 중심지이므로 상고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주현도에는 산천·강·도서(島嶼)·도로를 비롯하여 주현 읍치와 서울까지의 거리, 각 읍의 군(軍)·호(戶)·전(田)·곡(穀)의 수를 군·현별로 지도 안에 기록하여 그 군현의 크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고적지(古蹟地)에는 간단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끝 부분에는 여러 장의 역사지도를 수록하였는데 1면 크기의 「동방제국도(東方諸國圖)」·「사군삼한도(四郡三韓圖)」·「삼국전도(三國全圖)」·「본조팔도성경합도(本朝八道盛京合圖)」와 4면 크기의 「신라구주군현총도(新羅九州郡縣總圖)」·「고려오도양계주현총도(高麗五道兩界州縣總圖)」등이 있고, 「군국총목표(軍國總目表)」를 수록하였다.
「군국총목표」에는 전국의 행정구역 수와 목장 수, 인구 수, 봉수 수, 장시 수, 군보 수 등의 통계가 있고, 전국의 각 군현별로 전답·민호(民戶)·남자 인구수·여자 인구수·군보(軍保)·곡부(穀簿)·방면(坊面)·서울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거경(距京)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참고자료로 이용되었다.
『청구도』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를 참고하여 만든 듯 하다. 『해동여지도』는 정조 때 제작되었는데 남북으로는 함경도를 1로 하여 해남을 118로 삼았으며, 동서는 함경도에서 1로 시작하여 평안도가 76으로 끝난다. 이러한 경위선 표식 지도는 전국을 커다란 하나의 방안에 넣어 제작하였기 때문에 이전에 제작한 다른 지도에 비하여 매우 정확한 편이다.
청구도의 장점을 요약하면, 첫째 『청구도』는 현존하는 고지도 중 가장 크며 축척이 약 1:216000에 해당하는 가로 462㎝, 세로 870㎝인 전국도이다.
둘째 『청구도』는 경위선 표식과 기하원본의 확대 축소법을 적용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에 앞서 제작된 어느 고지도보다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셋째 『청구도』는 군현의 경계를 확실하게 하였으며, 특히 비입지(飛入地)와 두입지(斗入地)를 표시하여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넷째 청구도는 보기좋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책첩(冊帖)으로 만들었다.
다섯째 각 읍의 군(軍)·호(戶)·전(田)·곡(穀)의 수를 군현별로 지도 안에 기록하여 그 군현의 크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