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운전」은 16세기 이전에는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통일신라 말기의 실존 인물인 최치원의 일대기를 전래의 다양한 화소들을 수용하여 허구화하였으며, 전기적(傳奇的) 요소가 강한 영웅소설의 면모를 보인다.
신라 때, 신임 현령마다 아내가 실종되는 일이 발생하던 문창에 현령으로 부임한 최충은 미리 아내의 손목에 명주실을 매어 두었다. 아내가 사라지자 최충은 뒷산 바위 틈으로 들어가 있는 실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가 금돼지를 죽이고 아내를 구출한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는 아들 최치원을 낳았다. 최충이 아이를 금돼지의 자식이라며 버렸더니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보호해 주고 천유(天儒)가 글을 가르쳤다.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가 중국의 황제에게까지 들리자 황제는 두 학사를 신라에 보내 글을 겨루게 하였는데 이들은 최치원을 당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간다.
이후 황제는 함 속에 물건을 넣어 신라에 보내며 맞히지 못하면 신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신라왕을 협박한다. 최치원은 함 속의 물건을 맞히면 벼슬과 땅을 나누어 주겠다는 임금의 명령과 승상 나업의 딸 운영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 나승상 집의 종이 된다. 최치원은 나업에게 물건을 맞히면 자신을 사위로 삼아달라고 하여 허락을 받고 함 속에 계란에서 부화한 병아리가 있음을 맞힌다.
황제가 함 속 물건을 맞힌 인재를 중국으로 들여 보내라고 하자 최치원은 자원하여 중국으로 간다. 도중에 용자(龍子) 이목(李牧)을 만나고, 늙은 할미를 만난 후 그의 지시로 강가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부적 세 개를 얻게 된다.
중국에서 최치원은 황제가 만들어 놓은 함정들을 부적 등을 이용하여 통과하고 이후 과거에도 급제한다. 또한 황소가 난을 일으키자 싸우지 않고 오직 한 장 글을 써 반란군을 투항하게 하여 문신후에 봉해진다.
그러나 최치원은 그를 질투한 대신들의 모함으로 남쪽 섬에 유배되는데, 그곳을 지나던 외국의 사신이 글을 얻어 황제에게 바치자 사신을 보내 최치원을 부른다. 이에 최치원은 낙양으로 돌아와 황제의 불의함을 꾸짖은 뒤 청사자를 타고 신라로 돌아오나 왕의 행차를 지나쳤다는 이유로 신라왕이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 명하자 가족들을 데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전기적 요소가 강한 영웅소설(英雄小說)에 속하며, 적강(謫降) · 기아(棄兒) · 글재주 다툼 · 알아맞히기 · 기계(奇計) 등 전래의 다양한 화소(話素)들이 복합되어 있다. 설화화된 역사적 인물 최치원이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에 의하여 소설의 주인공으로 형상화되었으나 작중 나타난 최치원의 행적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이 작품은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의 『효빈잡기(效嚬雜記)』의 기록에 기대어 1579년 이전이나 한문 이본인 「최문헌전」의 필사자인 신독재 김집(金集, 15741656)의 생몰 연대를 바탕으로 17세기 초반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최근에는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 창작 시기를 1389년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작품에는 금돼지의 최치원 어머니 납치, 늙은 할미[老姑]와 용의 아들인 이목과의 만남, 그들의 최치원에 대한 뒷바라지, 최치원과 선녀와의 노닒 등 민담적 요소와 전설적 요소, 그리고 신화적인 요소가 꽤 많이 수용되어 있다. 더불어 이 작품은 당나라에 대한 최치원의 저항 · 공격 · 승리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북방 민족에게 당하는 시달림을 정신적으로 극복 및 보상하고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작품의 일면이요 일부일 뿐, 전면 혹은 전부는 아니다. 이 작품에는 외관상 혹은 형식상의 관계에서와는 달리, 실질적인 면에서는 임금보다는 신하가, 관리보다는 백성이, 그리고 주인보다는 종이 더 우월한 존재로, 또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혹은 아버지보다는 그 아들이나 딸이,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우월한 존재로, 그리고 중국의 선비보다는 신라의 선비가 더 우월한 존재로 그려져 있어서 흥미롭다.
「최고운전」은 강대한 것과 약소한 것의 형식적 관계와 내용적 관계가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 당시의 실상임을 보여 줌으로써 존재와 당위가 무엇인가를 시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즉, 한결같이 명분 · 체면 · 나이 · 권위 · 신분 · 형식 등을 내세워 서사적 자아를 억압하는 세계의 부당한 횡포를 비판하고 고발함으로써 당대 중세적 질서의 위기를 문제삼고 있는 소설이다.
더불어 이 작품은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어 민간은 물론 사대부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