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암 출신. 1926년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장재성(張載性)·임주홍(林周弘)·정우채(鄭瑀采)·안종익(安鍾翊)·김창주(金昌柱)·왕재일(王在一)·정남균(鄭南均)·박인생(朴仁生)·김광용(金匡溶)·채영석(蔡泳錫)·김한필(金漢苾)·정종석(鄭鍾錫)·국순엽(鞠淳葉)·문승수(文升洙)·정동수(鄭東秀) 등 15명과 함께 하숙방에서 일제의 폭압으로부터 한국의 독립쟁취,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에 대한 반대 등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 항일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였다.
그 뒤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 맹휴투쟁의 주동자로 붙잡혀 퇴학처분과 함께 8개월간 복역하였고, 다음해 대대적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이 운동의 주도단체로 지목된 이른바 성진회사건으로 다시 붙잡혀 1심판결에서 3년 6월의 형을 선고받았고, 1931년 6월 13일 2심판결에서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