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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타이프(인쇄전신기)와 엑스체인지(교환장치)가 결합되어 줄어든 인쇄전신 교환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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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렉스
    분야
    과학기술
    유형
    개념용어
    시대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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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타이프(인쇄전신기)와 엑스체인지(교환장치)가 결합되어 줄어든 인쇄전신 교환장치.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흔히 이 장치에 의하여 제공되는 전신 서비스까지를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며, 우리말로는 가입전신이라 한다. 가입자 댁내에 설치한 인쇄전신기와, 교환국에 설치된 교환장치 및 이를 연결해주는 반송 전신회선(하나의 실제 회선에 여럿이 공유하여 전송할 수 있는 전송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입자가 상대방을 연결할 때는 다이얼 또는 건반으로 해당 가입번호를 선택하여 상대방 가입자를 호출한다. 건반이란 자판 또는 키보드라고 말하며 로마자의 경우 타자기와 그 배열이 일치하지만, 한글의 경우는 푸어스기를 채용했기 때문에 33타건 2벌식과는 다른 배열을 가진 26타건 방식이었다. 자판 구도나 부호체계에서 현재의 컴퓨터나 인터넷 교신의 원형이 된다.
    인쇄전신은 문자를 부호로 전환하여 전송한다는 점에서 우편과 구별되지만 모스전신처럼 부호로 변환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모스부호는 장단(돈과 쓰라고도 한다)의 조합으로 구성된 비동기식 부호체계인데 반해서 인쇄전신기는 동기식 5단위 등간격 조합 부호체계를 사용하였다. 초기 인쇄전신은 두 지점 사이에 전용회선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이를 전용전신 또는 단순히 인쇄전신(텔레타이프)이라 한다.
    그러나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교환방식으로 전환된 것이 가입전신이다. 한국에서는 1965년 12월 5일 서독제 텔렉스 자동교환시스템이 도입되어 운영되면서 당시 국제무역의 교신방식으로 왕자의 위치에 차지하고 있었다.
    모스전신은 인자전신과 음향전신으로 나뉘는데, 인자전신의 자동 부호 수신장치에서 부호가 아닌 문자를 직접 인자하는 인쇄전신기가 고안되었다. 최초로 이 방식을 고안한 사람은 휴즈였으며, 그는 영국사람으로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이다. 1855년에 처음 고안되었는데 52타건 자판에 골프 공처럼 생긴 볼 타자식 인자방식에 두루마리 종이띠가 먹혀 들어가면서 인쇄되는 형식으로 오늘날의 인쇄전신기와 매우 비슷하였다.
    타자기와 통신회선이 연결되어 문자를 전송하는 자동 문자 전송방식이었는데, 아직 타자기가 고안되기 이전에 자판을 사용하고 원거리 전송에 전자석의 기능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고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전송에서 인자 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등 속도가 늦은 것이 단점이었다.
    이 5단위를 등간격으로 구성하여 시분할방식으로 전송한 다음 동기신호에 의하여 연속적으로 수신하는 오늘날 인쇄전신 부호와 방식은 1876년 보닷(Baudot)이 고안하였다. 모스부호처럼 등간격 부호를 사용했다는 점과 시분할 동기식 전송을 채택하였다는 것은 오늘날 펄스부호 변조의 토대가 되었으며, 컴퓨터 내부처리나 인터넷 교신에서 사용하는 7단위 아스키 부호계의 원형이 된다.
    그러나 5단위 부호는 우리 나라의 봉수에서 제일 먼저 채용하였다. 1419년(세종 원년) 당시까지 4단위이던 것을 5단위로 바꾸어 병렬전송을 한 데서 유래된다. 그러나 전기현상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그 이후에 보닷 5단위 코드에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1967년 컴퓨터 도입, 그리고 1972년의 외한은행의 전용 데이터 통신 도입으로 시작된 정보통신은 인터넷 통신으로 발전하면서 문자통신은 인쇄전신에서 컴퓨터통신으로 중심축이 이동하였으며,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완전히 사양길에 접어들고 말았다. 지금은 북한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직도 남아 있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데이터 통신은 인쇄전신 부호에 아스키부호를 전송할 수 있는 모뎀(변복조기)을 전용회선에 연결하여 문자를 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인쇄전신 부호와 동일한 부호를 사용하지만 5단위에 2빗이나 3빗을 추가하여 7빗 내지 8빗으로 전송하는 점만 다를 뿐이다. 7빗 부호를 일명 아스키(ASCCI) 부호라 한다. 컴퓨터 통신은 전화선에 모뎀을 부착하고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일반전화처럼 다자간에 연결할 수 있는 통신방식이다. 말하자면 가입전신과 유사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인쇄전신기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39년으로, 일제 강점시기 일본 문자를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일본은 한글로 된 전보는 일본문 전보에 비해 2배나 진수하였지만, 사실 일본문자는 한글이나 로마자와는 달리 음절자 50음으로 구성되어 있어 5단위 조합으로는 부호변환이 어려워 7단위 등간격 부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국제적 호환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 문자는 반듯이 한자로 다시 변환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 문자의 전송에는 로마자나 한글과는 달리 곧바로 인자될 수가 없다.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자전송의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하여 일본은 1960년대부터 인쇄전신기를 포기하고 대신 문서 전체를 세분하여 문서의 원형을 전송하는 모사전신(팩스) 방식으로 전환하는 변신을 시도하였다.
    팩스에 의한 문서전송으로 텔렉스 문자통신을 대치한 것이다. 타자를 하지 않아서 편리하고 필기자체를 전송함으로서 동양권에서는 물론 로마자 권에서도 인기를 얻었으며 한 때 세계를 석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팩스는 인쇄전신에 비해 약 10배 이상 전송 효율이 떨어지고 타자를 치지 않는 대신 재가공이나 검색이 불가능하여 문자통신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인쇄전신기처럼 팩스 또한 사양길로 접어드는 추세에 있다.
    그 이외도 아날로그 하이비전(고선명 텔레비전의 일본명칭)이 현재의 텔레비전을 대치하도록 1968년 동경 올림픽에서부터 시도했지만 디지털 고선명 텔레비전에 밀려 추락한 사례도 비슷한 형국이다. 최근에는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아케이드 게임기(플레이 스테이션 등 )에서도 일본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으나 이 또한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일본 기술의 독자성이 미약했다기보다는 일본 문화의 본질적 취약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독창성과 보편성이 부족한 것이다. 일본은 유사이래 주변으로부터 문화를 차입하여 이를 개량 개선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일시적으로는 본고장의 수준을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창의성과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곧바로 한계에 직면하게 되며 또 다른 혁신(물결)이 밀려오면 맥없이 무너지는 구조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창의성에서는 뛰어나지만 개량 개선에는 약하다. 같은 한자권에서 일본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은 이두와 가나 그리고 쯔난(베트남식 이두)을 고안해서 한자 표기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정음 창제라는 독자적 문자체계를 만들어 이를 타개해 나가고, 베트남은 프랑스식 로마자 표기체계(비록 식민지하의 강제적 방법이지만)를 채택하는 혁신성을 보여주었다.
    한글의 독자적 구성(24자 또는 28자)은 로마자 인쇄전신기에서도 쉽게 적용되며 컴퓨터와 인터넷에서도 손쉽게 연결될 수가 있다.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그에 비해 개량 개선의 소산물인 일본은 가나를 버리지 못하여 인쇄전신과 팩스에서는 물론 인터넷에서도 적응하지 못하여 한국에도 뒤질 것이 뻔하며, 또 다른 변혁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혁신과 개량, 그리고 보편성과 아집성의 차이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한글 인쇄전신은 1957년에 당시 체신부에서 채택되어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일본제 7단위 찬공지(부호에다 구멍을 뚫든가 뚫지 않는 것으로 구분한다)에다 두 줄은 남겨두고 다섯 개의 찬공만을 사용하는 기형적인 형태였으며, 로마자 자판구도와 곧바로 호환이 가능하도록 한글 24자모에 ㅐ와 ㅔ를 추가하여 26타건 입력 자판에 가로 풀어쓰기 인쇄방식을 채용한 것이었다. 즉, 미·일 합작품인 셈이다.
    그러나 한글의 특성상 기계적 구성은 별로 어려움이 없었지만 당시 기술로는 모아쓰기가 되지 않아 일반의 문자생활과는 일정한 괴리가 생겼다. 더군다나 당시의 한글 모아치기 타자기는 3벌식(공병우식)과 5벌식(김동훈식) 등이 다양하게 보급되어 타자기와 서로 호환성이 없었으며, 따라서 통일된 자판이 문제였다. 당시 인쇄전신기는 기계식으로 모아쓰기 인쇄는 불가능하였으므로 풀어쓰기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타자기와 인쇄전신기의 자판통일에 대한 통합 시도가 있었지만 각각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한 결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결국 당시 체신부에서 이듬해 1958년 풀어치기 2벌식 26건반의 자판과 가로 풀어쓰기 인쇄를 표준방식으로 채택하였으며, 타자기 자판도 3벌식과 5벌식에서 신속성(공병우)과 미려성(김동훈)만을 주장한 채 각각 제 갈 길로 가고 말았다.
    이후 1964년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자판은 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컴퓨터는 지능기계임으로 풀어치기로 입력된 것을 모아쓰기 출력이 가능하게 되었다. 정렬방식(오토마타)이라 하는데 타자기·인쇄전신기·컴퓨터간의 자판 통일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많은 토론과 논의 끝에 3벌식과 5벌식을 절충한 4벌식으로 되었다가 다시 2벌식으로 통일되었다. 즉 모아치기 33타건의 컴퓨터 표준자판으로 정리된 것이다. 이를 KS 5601-1984 자판이라 한다.
    한편, 북한에서는 1991년 ISO 표준기구에 북한 단독으로 국제 표준안을 제출하였다. 이 자판은 이른바 치환타건 방식으로 2벌식 26타건 이었다. 치환 타건이란 쌍자음을 칠 때 뒤에 오는 모음을 연속으로 두 번씩 연속으로 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까는 ㄱ+ㅏ+ㅏ이고 꺼는 ㄱ+ㅓ+ㅓ등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오토마타가 성립되는 최소 입력자판으로 속도가 빠르지만 일반의 문자생활과 괴리가 있었다. 이 안은 남북이 합의하여 철회되었다.
    그 후 북한은 치환타건법을 버리고 남한 자판과 같이 쌍자음 5개를 독립적으로 배치하고 ㅒ와 ㅖ를 제외한 31타건을 1997년 표준안으로 확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남·북 자판의 배열의 차이는 통일시대에 이르면 또 다른 논쟁의 씨앗을 품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94년부터 한국어학회에서 주도하여 전후 5차례에 걸쳐 남한, 북한, 그리고 중국도 참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공동연구안(ICCKL-2001)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배열의 31타건 자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2001년 현재 남한, 북한, 중국의 어디에서도 공식적으로 보급되거나 표준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만약 합의하여 상호 표준으로 채택한다면 중국 조선족의 중국 국가표준은 물론 국제 표준규격으로 상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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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 (1997년)
    진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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