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윤씨(尹氏).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이눌(而訥), 호는 침굉(枕肱). 어머니는 최씨이다.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천봉산 처우화상(處愚和尙)에게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3세 때 지리산으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수제자인 태능(太能)을 찾아가 그의 법을 계승하고 오도(悟道)의 선승(禪僧)이라는 말을 들었다. 19세에 윤선도(尹善道)가 양자로 삼아 환속시키려 하였으나 울면서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그 뒤 윤선도가 을사사화로 광양에 유배되었을 때 그를 찾아가 「창랑가(滄浪歌)」를 불러 위로하였다고 한다.
특히 윤선도의 영향을 받아 국문가사를 남기고 있다. 선교(禪敎)에 밝았을 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에도 조예가 깊었고 서예와 문학에도 능통하였으며, 말년에는 염불이야말로 성불의 직절문(直截門)이라는 서산대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염불에서 안심처를 구하였다.
선암사(仙巖寺) 주지를 비롯하여 송광사(松廣寺)·연곡사(燕谷寺) 등 호남지방의 대찰에 머물렀으며, 전라남도 금화사(金華寺)에서 입적하였다. 자신의 유체(遺體)를 화장하지 말고 냇가나 숲속에 두어 까마귀나 솔개에게 공양하도록 유언하였으므로, 제자들이 시신을 금화산 봉우리 바위틈에 넣었으나 새들도 그의 시신을 범하지 않고 안색도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서로는 『침굉집』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