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성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사화로 고초를 겪었던 아버지를 보며 관직에 나가지 않고 후진 교육에 힘썼으나,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하여 죽은 학자.
이칭
강중(剛中)
불정산인(佛頂山人)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28년(중종 23)
사망 연도
1597년(선조 30)
본관
남양(南陽 : 지금의 경기도 화성)
주요 관직
향리
관련 사건
정유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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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사화로 고초를 겪었던 아버지를 보며 관직에 나가지 않고 후진 교육에 힘썼으나,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하여 죽은 학자.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강중(剛中), 호는 불정산인(佛頂山人). 아버지는 사림파 학자였던 홍유손(洪礻+谷孫)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천성이 고결하고 아담하였으며, 아버지가 사화로 고초를 겪었던 사실에 영향을 받아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학문에 깊이 침잠하여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후진을 교육하는 데 온갖 힘을 다하였다.

고문(古文)에 특히 정통하여 어떤 난해한 구절도 조리있게 해석하여 조금의 의의(疑義)도 없게 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왜병에 의하여 해를 입어 죽었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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