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영천 의병장 정세아와 그 아들 정의번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777년(정조 1) 서재(書齋) 뒤에 충현사를 지어 향사(享祀)하고 강학(講學)의 도장으로 사용하여 왔다. 정의번은 경주 복성전에서 왜적에게 포위되자 아버지를 구출하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 뒤 정의번의 충효정려가 내려 사당 좌측에 충효각이 세워졌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거되어 그 유지(遺址)에 충효각과 부속건물 2동이 남아 있다.
재실(齋室)은 유사실(有司室)로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 기와지붕이다. 직사(直舍)는 정면 6칸, 측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이며, 충효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기와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