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높이 약 1.6m의 석단 위에 있다. 석단 중심부에는 10단의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길이와 너비가 맞먹는 평면을 이룬 동시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단주(丹柱)는 크지 않기 때문에 폭넓은 정위(定位)에 매우 안정된 비례를 이루고 있다.
어간·협간의 칸살이 모두 같고, 4우주(隅柱)상에는 현저한 귀솟음이 있고, 주고(柱高)와 간장(間長)에 비하여 다포를 가진 처마의 높이가 큰 편이며, 또한 길어서 하반부의 중량이 최대한에 이르러 전체의 형식이 장중(壯重)·광안(廣安)한 경향을 띠었다.
문은 정면 5칸이 모두 井자살 분합으로 개구되었고, 측면은 첫칸에만 좌우대칭으로 외짝 井자살문이 있었으나, 우측 것은 문틀을 놓아둔 채 토벽을 쳐서 폐문하였다. 뒤쪽은 어간과 좌우 끝칸에 정자살 분합과 판장(板墻: 널판장) 분합을 달고 격간(隔間) 2칸은 토벽을 하였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후방에서 1칸 건너 3칸통의 불단을 안치하였고, 4개의 고주가 일자로 후불벽(後佛壁)을 이루고 있다. 전면 井자살 문호(門戶)의 아랫도리 공판(貢板)은 모두 옆으로 가운데를 띠로 막아 2단으로 하였다.
기둥머리에 평방·창방이 있고, 주심(柱心)·주두(柱頭) 위에 각 1개, 각 주간(柱間)에 1조(組)씩의 공포를 짜올리되 외삼출목(外三出目) 5포(包), 내사출목(內四出目) 7포로 하였다.
첨차 마구리는 비스듬히 잘랐고 쇠서는 방두앙서[方頭仰舌]인데 이 쇠서의 곡률(曲率)은 조선 전기의 많은 직설(直舌)에 가까운 것들에 비하여 현저하다. 포간(包間)은 벽체를 하고 연화문(蓮花文)·보상화문(寶相華文)을 별화(別畫)로 장식하였다.
내주(內周) 제4출목상에서 대들보 위로 충량(衝樑)을 걸고 네 귀퉁이에는 제4·5교두에서 살미 충량을 내어 끝 충량 옆에 부착하여 대들보 위에 걸었다. 대동상(大桐上)에는 소동자주(小童子柱)를 놓고 주두를 놓아 이중첨차교두 십자교형포(十字交形包)를 따로 만들어 그 위에 중량(中樑)을 놓았다.
단청은 금모로(錦毛老)·별화 단청이며 반자초(草)는 6화형연화문(六花形蓮花文)이고 6엽(六葉) 안에는 범자(梵字)를 전서(全書)하였다. 대들보의 별화는 좌청룡 우백호로 하였다. 대체로, 건물의 구조나 단청의 문채(文彩)가 고격(古格)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