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율곡리에 있는 신도비로, 1998년 8월 3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채수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로, 남양부사였던 채신보(蔡申保)의 아들이다. 1468년(세조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장원하였으며, 사헌부감찰을 거쳐 예문관수찬, 홍문관교리, 사헌부지평, 이조정랑 등을 역임하고,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506년에는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분의정국공신 4등공신에 녹훈되기도 하였으나, 그 후 벼슬을 버리고 경상도 함창(지금의 경상북도 상주군 지역)에 은거하여 쾌재정(快哉亭)을 짓고 독서와 풍류로 여생을 보냈다. 사후에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며, 저서로는 『나재집』을 남겼다. 1703년(숙종 29)임호서원(臨湖書院)이 건립되어 표연말(表沿沫) · 홍귀달(洪貴達) 등과 함께 제향되었다.
이 비는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螭首)로 구성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360㎝이다. 이수는 화강암을 높이 65㎝, 너비 115㎝, 두께 30㎝로 다듬었고, 전면과 후면에 두 마리의 용과 구름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높이 210㎝, 너비 104㎝의 사각기둥으로 연마하여 전면에만 비문이 새겨져 있다. 상단에는 ‘仁川蔡公神道碑銘倂序(인천채공신도비명병서)’라는 전액(篆額)이 있고, 비문은 자경(字徑) 약 1.5㎝의 해서체로 쓰여져 있다. 귀부는 높이 85㎝, 너비 180㎝, 두께 110㎝의 화강암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몸체는 운룡문을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이 신도비는 풍화로 마모가 심하고 돌이끼가 비신 전면을 덮고 있어 상단 일부와 하단 일부의 약간을 제외하고는 판독이 불가능하지만, 『국조인물고』와 『나재집』의 내용을 통해 비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나재 채수 신도비는 경상북도 상주군에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비로 역사적 · 서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