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그 전신은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백운동서원은 1543년(중종 38)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의 건의로 1550년(명종 5)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이 서원에 소장된 판목은 『죽계지(竹溪志)』, 『추원록(追遠錄)』, 『가례언해서(家禮諺解序)』,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등 4종 902판으로,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죽계지』는 주세붕이 편찬한 것으로, 총 229판이다. 백운동서원이 세워진 다음해인 1544년(중종 39)에 주세붕이 그간의 사정을 엮어서 편찬한 것이다. 현재 4종의 판종이 알려지고 있는데, 임진왜란 전 판본은 산실되었고 임진왜란 후 수보본, 1884년(고종 21) 목활자본, 1909년 목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후 목판본을 보면, 권수(卷首)에 주세붕의 서문과 1545년 5월 성세창(成世昌)이 지은「백운동문성공묘기(白雲洞文成公廟記)」가 실려 있으며, 권1에 죽계안씨행록(竹溪安氏行錄)과 행록후(行錄後), 권2에 존현록(尊賢錄)과 존현록후(尊賢錄後), 권3에 학전록(學田錄), 권4에 장서록(藏書錄), 권5에 잡록(雜錄)과 잡록후(雜錄後), 권6에 별록(別錄)과 중간지(重刊識), 그리고 발(跋)이 실렸다.『죽계지』의 판목은 61×27×3㎝의 크기로, 사주단변(四周單邊)이다. 반곽의 크기는 22.2×17.8㎝이며, 10행 20자의 유계(有界), 대흑구(大黑口), 다양한 형태의 상하내향(上下內向) 화문어미花文魚尾) 등의 판식이다.
『추원록』은 안응창(安應昌)이 편찬한 것으로, 총 661판이다. 목판의 간기에 의하면, 1658년(효종 9)에 문소(聞韶: 지금의 의성)에서 판각을 시작하여 9월에 완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추원록』의 판목은 26.3×59.4×2.8㎝의 크기로,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반곽의 크기는 20.1×17.2㎝이며, 10행 18자, 유계(有界), 내향어미(內向魚尾)의 판식이다.
『가례언해서』는 인조 때의 문신 신식(申湜)이 편찬한 것으로, 총 4판이다. 주자의 『가례』를 일반에게 널리 알리고자 신식이 언해한 것이나 산실(散失)이 심해 서문의 판목만 남아 있다. 『육선생유고』는 총 8판으로, 성삼문(成三問) · 박팽년(朴彭年) · 하위지(河緯地) · 이개(李愷) · 유응부(兪應孚) · 유성원(柳誠源) 등 사육신의 시문집이다. 1658년(효종 9) 박팽년의 7대손 박숭고(朴崇古)가 여섯 선생의 유문(遺文)을 모아 편찬하였는데, 이 판목도 거의 산실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가례언해서』의 판목은 21.6×60×2.9㎝의 크기로 서문의 판목만 남아 있으며, 『육선생유고』의 판목은 20×51.4×2.9㎝의 크기로 역시 일부만 남아 있고, 거의 산실되었다.
『죽계지』의 판목은 초판이 산란(散亂)되어 후에 수보한 듯 중복되는 판도 상당수 있으며, 『추원록』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구리가 떨어져 분리된 것이 많고 일부는 유실되어 판면이 서로 부딪쳐 마모되었다.
소수서원의 소장 판목의 대종은 『죽계지』와 『추원록』이다. 특히 『추원록』은 인본의 전래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므로 판목의 중요성이 더욱 높다. 보관상태가 좋지 못하여 일부는 유실되기도 하였으나 당시의 판각 상황과 서지적 사항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