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조성된 4구의 사천왕상으로, 2004년 복장(腹藏) 조사에서 각종 전적류와 인본다라니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으며,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들고 있는 비파의 뒷면에 쓰여진 명문과 복장유물 등의 분석을 통해 1628년(인조 6)경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6년 4월 28일 보물로 지정되어, 송광사 천왕문(天王門)에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전체 앉은 높이는 403㎝이다. 우리나라의 사천왕상은 불·보살상의 존상과 달리 주로 대형의 소조(塑造)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독특한 제작기법을 보이고 있으며, 화려한 채색까지 가하고 있어 복합적인 조각 분야로서 주목되고 있다. 도상적으로 보면, 천왕문 입구에서 바라 볼 때 우측 안쪽으로 비파를 든 북방다문천(北方多聞天), 그 옆 입구 쪽으로 칼을 든 동방지국천(東方持國天), 좌측 안쪽으로 탑을 든 서방광목천(西方廣目天), 그 옆 입구 쪽으로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증장천(南方增長天)을 배치하였다. 이 네 천왕은 모두 의자에 앉아 양 발로 악귀를 제압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중년의 건장한 남성을 모델로 한 얼굴은 신체에 비해 큰 비례이지만, 천왕문 안에서 올려다보면 아래를 노려보는 큰 얼굴에서 더욱 위압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화염보주와 오색구름 문양의 장식된 화려한 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갑옷과 그 위를 감싸고 있는 천의자락·혁대·장화 등은 갖가지 색과 문양으로 치장되어 당시의 복식에 있어서의 뛰어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마치 광배처럼 머리 뒤로 휘날리고 있는 피건자락 둘레에는 화염문이 솟아 있으며, 양 팔 상완(上腕)에서 힘차게 휘날리는 소맷자락 역시 역동적으로 처리되었다.
이 사천왕상은 북방다문천의 비파 뒷면에 쓰여진 묵서명을 통해, 조선 후기 불화에 나타난 사천왕 도상의 변화가 실제 조각상에도 적용되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 전기까지는 탑을 든 천왕을 북방다문천으로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비파를 든 상이 북방다문천의 자리에 봉안되고, 탑은 든 천왕은 서방증장천의 자리에 봉안되는 변화를 보인다. 이를 원나라의 사천왕 도상에서 명나라의 사천왕 도상으로 전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 최근의 연구 성과가 주목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인 16세기의 장흥 보림사(寶林寺) 사천왕상이 다소 중국적인 사천왕상 양식을 나타내고 있는 데 반해, 17세기의 송광사 사천왕상은 조선의 사천왕상 양식을 이미 확립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한편, 북방다문천의 비파 뒷면에는 ‘創造(창조)’라는 용어를 써서 이 사천왕상이 새로 만들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송광사지(松廣寺誌)』에는 이 시기에 사천왕상을 ‘重造(중조)’하였다고 기술하고 있어, 당시 이러한 조각상을 중수(重修), 혹은 수리(修理)할 때의 용어개념에 있어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