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방산리 장고봉 고분 ( )

해남 방산리 장고봉 고분
해남 방산리 장고봉 고분
고대사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장고형무덤. 전방후원분. 시도기념물.
이칭
이칭
해남방산리장구봉고분, 장고봉고분, 장고산고분, 장고섬고분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기념물(1986년 02월 07일 지정)
소재지
전남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산1008-1번지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장고형무덤. 전방후원분. 시도기념물.
개설

방산리 장고봉고분은 1986년 2월 7일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이 처음 알려진 것은 일본 고유의 무덤이라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한반도에도 존재하는지 논쟁이 뜨거웠던 1984년 말이며 1985년 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인구 교수에 의한 봉토측량조사가 있었다. 한반도에서 장고형고분은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 분포하며 방산리 장고봉고분이 최대 규모이다. 이 고분의 봉토 원형부 중심에 널길〔羨道〕이 달린 장방형 돌방〔石室〕이 있는데 이미 도굴되었다. 장고봉고분을 포함한 고분군은 총 15기로 이뤄져 있고 면적은 2,850㎡이다.

내용

고분의 도굴여부와 정비를 위한 시굴조사가 2000년에 있었다. 고분은 방형부가 북쪽이며 원형부가 남쪽인데 해발고도상으로 방형부가 2m 정도 높다. 정밀측량 결과 봉토 자락으로부터의 크기는 전체 길이 76m, 원형부의 지름 43m, 높이 10m이고, 방형부는 너비 37m, 높이 9m이며, 연결부는 너비 30m, 높이 6m이다. 돌방은 봉토의 길이와 직교하게 동서방향으로 축조하였는데 지상식이다. 긴 널길 부분을 서쪽에 둔 장방형의 굴식〔橫穴式〕이다.

널방〔玄室〕은 길이 460㎝, 동벽 너비 240㎝, 높이 190㎝, 서벽 너비 210㎝, 높이 180㎝로 현문(玄門)이 있는 서쪽을 약간 좁혀 만들었다. 현문부의 크기는 길이 70㎝, 너비 58㎝, 높이 115㎝이다. 널길 부분은 길이 400㎝, 너비 120㎝인데 3매의 천장돌〔天障石〕을 비스듬히 덮었다. 널방은 단벽은 수직으로, 장벽은 내경하며 쌓아올렸고 하단과 천장돌 바로 아래는 판석을 나머지는 깬돌〔割石〕을 11∼12단으로 쌓았다. 천장돌은 5매의 판석으로 덮었으며 바닥석은 대270×180㎝의 판석 1매와 작은 판석을 깔았다. 널방 벽에는 주칠 흔적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장고봉고분은 외형과 널방 구조에서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관계가 있는 고분이다. 이런 점에서 주1와 축조집단의 성격을 두고 학계의 해석이 제 각각이다. 이 고분을 포함한 전방후원분 형태의 고분들은 영암 태간리 자라봉 고분, 함평 예덕리 신덕 고분군을 비롯한 전라남도 해안지방 및 내륙을 중심으로 한 서 · 남해안에서 10여 곳이 알려져 있다. 이 고분의 조영시기는 4∼5세기대로 추정되며, 영산강 유역의 재지세력이 백제와 왜의 교섭 속에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해남 장고봉고분 시굴조사보고서』(국립광주박물관, 2001)
『한국의 전방후원분 ‘무기산과 장고산’측량조사보고서』(강인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무기산과 장고산』(강인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전남지방 장고형고분의 축조기획에 대하여」(성낙준,『역사학연구』12, 전남대학교 사학회, 1993)
「해남 장고산고분 조사」(강인구,『천관우선생환력기념 한국사학논총』, 정음문화사, 1985)
주석
주1

무덤에 매장되어 있는 사람.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