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1984년 7월에 지정되었다. 대흥동은 원래 경산군 고산면에 속하였으며, 고려시대에 곡기(谷己)라 불렸던, 옛 ‘서울나들’에 위치하는 전형적 농촌이며 각성바지 촌이다.
대흥동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상당굿, 중당굿, 하당굿)를 지내는데 중당 · 하당굿과 길매구 등의 제의농악, 경상도 고유 정월 풍속인 지신밟기의 집돌이농악(문굿 · 성주풀이 · 조왕풀이 · 장고방풀이 · 용왕풀이 · 고방풀이 · 방앗간풀이 · 마굿간풀이 · 마당풀이), 윗대에서부터 ‘농사가 잘 되려면 농악을 잘 하라.’는 당부가 전해내려 오듯 논매는 시기의 두레농악이 왕성했고, 농악계가 조직되어 있어 노인회 등의 초청을 받으면 판제농악(판굿)도 펼쳐 주곤 했다.
1983년도 제23회 전국 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문공부 장관상(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때 받은 상금으로 고산농악대가 발족되었다.
판굿에서는 태극진-3방진-덧뵈기춤-닭 쫓기, 멍석말이-농사굿-개인놀이(법고 · 장구 · 징 · 상모놀이)-뒷풀이로 이어진다. 판굿의 쇠가락 명칭으로 부락마치(길매구가락), 조름쇠, 굿거리 및 살풀이가 있다.
비교적 순수한 마을농악이며, 가락이 소박한 점, 농악기에 나무나발인 ‘목덩강’이 있는 점, 농기수 · 징수 · 북수 · 장구수가 쓰는 흰고깔이 매우 큰 점, 판제에 ‘닭 쫓기’-상모꾼 전원이 서로 손을 잡고 원을 지어 돌면서 닭(양반과 각시)을 쫓는 시늉을 함-를 넣은 점, 악기편성에서 징과 북이 중요시 되는 점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잡색으로는 양반(1명) · 포수(1) · 색시(2)가 등장한다. 쇠 2명(상쇠, 종쇠), 징 6명, 북 10명, 소고(상모) 14명, 농기 3명, 나무나발 1명으로 편성된다. 고산농악은 상쇠 장이만(張利萬:남, 1923년생)에 의하여 그 쇠가락이 전승, 보존되어 왔었다.
1997년 현재 대흥동에서 태어나 20여 세부터 고(故) 장이만의 쇠가락을 전수받았고, 오랫동안 고산농악의 종쇠를 담당해 온 정창화(남, 73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