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권준(權準)

고려시대사인물

 고려후기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권준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후기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중(平仲), 호는 송재(松齋). 할아버지는 찬성사 권단(權㫜)이고 아버지는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 권보(權溥)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과거에 급제하여 충선왕을 중국 연경에서 만나 대언(代言)에 발탁되고, 원나라 왕에게 아뢰어 무위장군합포만호(武衛將軍合浦萬戶)에 임명되었다.
1310년(충선왕 2) 밀직부사(密直副使), 1313년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올랐다. 조적(曺頔) 등이 충숙왕을 모함하여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에게 왕위를 넘기도록 책동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심왕에게 붙었으나 의리를 지켜 변하지 않았다.
변이 평정되자 첨의찬성사에 임명되고, 또 조적이 패하자 충혜왕은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으로 봉하고 부(府)를 열어 요속(僚屬)을 두었다. 충목왕이 돌아가자 기로대신(耆老大臣)들과 원나라에 글을 올려 공민왕을 세울 것을 청하기도 하였다.
권씨는 할아버지 권단 이래 명문으로 드러났고 외손녀가 충혜왕 때 화비(和妃)로 책봉되니 권세와 부귀를 크게 누렸다. 임금으로부터 제택(第宅)과 금잔(金盞)이 하사되기도 하였으며 가속들이 죄를 지어도 순군(巡軍)이 감히 처벌하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충숙왕이 집에 행행하여 국왕으로서도 미치지 못하겠다고 한탄한 것은 그 저택의 호화로움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도를 믿고 뇌물을 받아 청렴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아버지 권보의 지시로 이제현과 함께 『효행록』을 지었다. 아들로 권염(權廉)과 권적(權適)이 있다. 시호는 창화(昌和)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희덕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