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

유교
인물
조선후기 담양군수, 제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사수(士修)
우계(愚溪), 보가재(寶稼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9년(숙종 25)
사망 연도
1766년(영조 42)
본관
광산(光山)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담양군수|제천군수
정의
조선후기 담양군수, 제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수(士修), 호는 우계(愚溪) 또는 보가재(寶稼齋). 아버지는 김광택(金光澤)이며,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 유진택(柳震澤)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 유숙기(兪肅基)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뒤에 정복천(鄭復天)에게 사사받았다. 경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

경종이 허약하여 세제책봉의 논의가 있을 때 유봉휘(柳鳳輝)와 조태구(趙泰耉) 등이 반대하자, 성균관의 유생을 인솔하고 규탄하는 상소를 하였다.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개탄하여 성균관을 물러나와 학문에 열중하였다.

1755년(영조 31) 음보(蔭補)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을 지내고, 뒤에 담양군수와 제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고을에 흉년이 들자 세금과 부역을 경감하고 경비를 절용하여 모범을 보였고, 서원을 중수하여 학문을 권장하였다. 저서로는 『우계만록(愚溪謾錄)』이 있다.

참고문헌

『석당집(石堂集)』
『영조실록(英祖實錄)』
『우계만록(愚溪謾錄)』
집필자
권오호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