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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계족산성(大田鷄足山城)

    건축문화재 | 유적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   산성.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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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대전계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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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산성. 사적.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사적 제355호. 지정면적 8만 5,501㎡, 둘레 1,037m. 높이 399m의 계족산 위에 있는 테뫼형 산성(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으로서 현존하는 성벽의 안쪽 높이는 3.4m, 외벽 높이는 7m, 상부 너비는 3.7m이다.
    가장 잘 남아 있는 북쪽 성벽의 높이는 10.5m, 서쪽 성벽의 높이는 6.8m이다. 성의 동·서·남쪽에 너비 4m의 문지(門址)가 있으며, 또 길이 110㎝, 너비 75㎝, 높이 63㎝의 장방형 우물터가 있는데, 그 아래로 약 1m의 수로가 있다.
    상봉에 봉수(烽燧)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며, 건물터와 주춧돌이 남아 있다. 금강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있고, 백제시대 토기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이 산성을 근거로 한때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하기도 하였고, 조선 말기 동학 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성벽은 대개 7×30㎝의 납작한 자연활석을 석재로 사용한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나, 동쪽 성벽 약 200m 정도는 안과 밖으로 석재를 쌓아올리는 내외협축공법(內外夾築工法)을 이용하였다. 현재 남문지 밖에는 지름 12㎝, 깊이 12㎝의 구멍이 뚫린 문초석(門礎石)이 있다.
    성안에서 백제시대는 물론 신라·고려·조선시대의 토기와 자기조각이 출토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된 산성임을 증명해 준다.
    이 산성은 그 아래에 견두성(犬頭城)과 같은 보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며, 부근에 질현성(迭峴城)·능성(陵城)·내사지성(內斯只城)·우술성(雨述城)·진현성(眞峴城)·사정성(沙井城)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현황
    1992년부터 2011년까지 계족산성 보수정비사업(1단계 사업)이 추진되어 2011년에 전체 산성 1,037m 가운데 원형보존구간 246m를 제외한 791m가 복원되었다. 이후 2012년부터 2016년까지 2단계 사업인 ‘계족산성 종합정비활용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문화유적총람』 상(문화재관리국,1977)

    • 「백제부흥군의 주요거점에 관한 연구」(심정보,『백제연구』14,1983)

    • 「대전부근고대성지고」(성주탁,『백제연구』5,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1974)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성주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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