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동국악부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동국악부(東國樂府)

    한문학작품

     조선 후기에 이광사(李匡師)와 그의 아들 영익(令翊)이 지은 악부시.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동국악부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 후기에 이광사(李匡師)와 그의 아들 영익(令翊)이 지은 악부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조선 후기에 이광사(李匡師)와 그의 아들 영익(令翊)이 지은 악부시. 이광사의 문집 『원교집 圓嶠集』에 전한다. 원래 이광사가 「해동악부 海東樂府」라 하여 30수를 지었는데, 여기에 그의 아들이 화답한 시를 합한 것이다.
    그러나 각 시마다 화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다른 작품 말미에만 붙였기에 몇 수 되지 않는다. 형식은 장단구(長短句)를 취하면서도 삼언 내지 칠언까지 다양하다.
    설씨녀(薛氏女)를 소재로 한 「파경합 破鏡合」처럼 오언 280구 1,400자나 되는 장편이 있는가 하면 24자밖에 안 되는 「두문동 杜門洞」도 있다. 이 작품은 소론 명문 출신인 이광사가, 영조 즉위와 함께 소론이 축출당할 때 부친과 함께 귀양가서 지은 것이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읊은 영사악부(詠史樂府)에서 단군 이래부터 고려말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가 대부분이고 고려의 역사는 몇 수뿐이다. 왕조의 시작이나 국난극복에 작자의 시각이 맞추어진듯하며, 특히 건국신화들을 시대순으로 읊었다.
    조선조의 건국에 관해서는 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 何如歌」를 소재로 한 「백사가 百死歌」가 있을 뿐이고 고려 유민의 저항을 다룬 「두문동」으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작자의 예술적 취향에 따라 예스럽고 우아한 표현을 쓰고 있는 이 작품은 별달리 두드러진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이 고려유민의 저항으로 끝마무리를 했다는 점에서 유배중인 작가의 저항정신이 투영되었다고 하겠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종찬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