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양식의 사모지붕건물. 197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복궁의 궁담[宮墻] 동남 모서리에 위치했던 망루로서 1880년 무렵에 건립되었다.
하부기단은 장대석을 7단으로 쌓아 네모난 축대를 만들고 석 줄의 십자형이 투각된 아담한 전축여장(塼築女墻 : 성위에 벽돌로 쌓은 담)을 둘렀다. 북쪽에는 조그만 편문(便門)을 내고 그 안에 앞 · 옆면의 길이가 똑같은 방형의 누각을 세웠다.
지면에서 이 누각으로 통하던 석조계단은 민족항일기 때 철거되었고, 토상사주(土床四周)로 돌린 화강장대(花崗長臺)의 각 면에는 서수(瑞獸)의 머리장식으로 꾸민 석루조(石漏槽 : 돌 홈통)를 2개씩 설치하였다.
누각의 기둥은 둥근 기둥으로서 외부 기둥 사이에는 간략하게 하방(下枋)과 창방(昌枋)만을 짜올리고 벽 없이 모두 개방하였다. 기둥과 창방 아래에는 낙양각으로 장식하였으며, 바닥은 토간(土間)을 그대로 두었으나 내부 중앙칸은 문비(門扉)를 단 방으로 되어 있다.
공포(栱包)는 이익공(二翼工)양식이며, 기둥 사이의 상부 가구(架構)는 긴 화반(花盤)을 두어 간략하게 하였으나, 귀에만은 장식을 하여 45°각의 공포를 짜 추녀 뒷몸을 받게 하였다.
천장은 네모집 특유의 산자(橵子 : 서까래 위에 흙을 받치기 위하여 엮어 까는 나뭇개비)와 장연(長椽)만의 가구로 삿갓천장처럼 짜 놓았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사모지붕의 추녀마루는 회덧칠을 하고 용두(龍頭)와 잡상(雜像)을 배열하였으며, 정상부에는 연화노반형(蓮花露盤形)의 절병통(節甁桶 : 지붕마루의 가운데 세우는 탑모양의 기와로 된 장식)을 올려놓았다.
본래 경복궁 외궁성(外宮城)이 영추문(迎秋門)을 향하여 꺾어지는 부분에 있었던 서십자각(西十字閣)과 같은 규모로 그 위치가 서로 대칭되도록 지어졌던 것이다.
현재 서십자각은 없어졌고 민족항일기 때 중앙청을 지으면서 광화문을 옮기고 홍례문(弘禮門)을 헐고 궁성을 철거할 때, 양 날개의 담장을 모두 잃어 지금과 같이 길거리에 남게 되었다. 규모는 비록 작으나 공예 · 조각 기법이 잘 조화되어 광화문 동익루(東翼樓)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고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