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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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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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행정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판사, 광주고등법원장, 대법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 문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5년 3월 6일
사망 연도
1970년 11월 18일
본관
온양
출생지
서울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판사, 광주고등법원장, 대법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 문학가.
내용

1905년 3월 6일 서울 출생으로, 본관은 온양(溫陽), 아명은 원룡(元龍)이며, 필명은 김화산(金華山)이다. 1921년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1924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3월 경성지방법원 서기 겸 통역생이 되었다. 경성법학전문학교 재학 시절부터 정지용(鄭芝溶), 박팔양(朴八陽) 등과 함께 등사판 회람 잡지 『요람(搖籃)』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문학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23년 최초의 사화집(詞話集)인 『폐허의 염군(廢墟의 焰群)』에 시 「환상야곡」을 발표했다.

1927년 아나키즘 문학론을 대표하는 소설『악마도(惡魔道)』와 평론 『계급예술론의 신전개─공산파 문학론가에 대한 일소검토』를 발표해 아나키즘 논쟁을 촉발시켰으며, 아나키즘 문예이론 정립을 시도한 많은 작품을 발표해 아나키즘의 시각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33년 8월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판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해 공주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하면서 문학 활동을 중단하고 법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부산지방법원,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 대전지방법원,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 경성지방법원 인천지청 등에서 판사를 역임했으며, 1942년 3월 일본 정부로부터 서보장(훈6등)을 받았다.

인천지청 판사로 재직 중 해방을 맞았으며, 1947년 서울에서 변호사를 개업해 활동하기도 했다. 1959년 대법원 판사, 1960년 광주고등법원장에 임명되었다. 1961년 8월 퇴직했으나 1964년 대법관에 재차 임용되었다. 1966년 퇴직하였고, 이후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70년 11월 18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조선총독부 조선인 사법관』(전병무, 역사공간, 2012)
『친일인명사전』2 (민족문제연구소, 2009)
『조선사법대관』(사법협회, 1936)
「총독부 사법 관료의 아나키즘 문학론: 김화산의 삶과 문학 활동」(유문선, 『한국현대문학연구』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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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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