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방한상(方漢相)

근대사인물

 일제강점기 대구청년회 간부, 진우연맹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방한상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청년회 간부, 진우연맹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호는 만취(晩翠). 경상남도 함양 출신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23년 5월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중퇴하고 귀국해 대구에서 가업인 한약상(漢藥商)을 도우면서 대구청년회 간부로서 활동하였다.
1924년 4월에는 서울로 올라가 머물렀다. 이후 북풍회(北風會)·화요회(火曜會) 등의 사회주의 계열과 접촉하면서 조선청년총동맹과 조선노농총동맹 등의 단체에 참여하였다. 무정부주의사상에 심취한 방한상은 사회주의 계열과의 공동 투쟁에 회의를 느꼈다. 무정부주의 동지들의 독자적 이념 연마와 결속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1925년 9월대구에서 신재모(申宰模)·정명준(鄭命俊)·서학이(徐學伊)·마명(馬鳴)·정해룡(鄭海龍)·안달득(安達得)·서동성(徐東星)·하종진(河鐘璡)·김동석(金東碩) 등과 무정부주의사상 연구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일본의 여러 단체와 제휴해 공동 노선을 추구하기로 하였다.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東京)·대판(大阪) 등지에서 조선인·일본인 동지들과 교유하면서 긴밀한 유대를 맺었다.
자아인사(自我人社)의 구리하라[栗原一男], 흑화사(黑化社)의 랴쿠모토[掠本運雄], 흑우회(黑友會)의 김정근(金正根) 및 흑선풍(黑旋風), 해방전선(解放戰線), 자유노동(自由勞動), 관동(關東)노동조합연합회 등과 연합해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을 결성하고 본부를 동경에 두었다.
한편, 시곡(市谷) 형무소로 박렬(朴烈)과 가네코(金子文子)를 면회 위문하고 돌아와 의연금을 모아 송금하기도 하였다. 1926년 4월 구리하라·후세(布施辰治) 등이 대구로 오자 진우연맹과 흑색청년연맹의 협력을 다짐하는 등 무정부주의운동에 대해 협의하였다.
진우연맹 회원들은 여러 차례 회합 끝에 아나키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흑색청년연맹과 제휴할 것, 그리고 부호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대구 일대에서 파괴·암살을 실행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우선 경상북도도청 및 경찰서·재판소·정거장을 한꺼번에 파괴하고, 도지사 이하 중요관헌을 암살한 이후에 일본인들의 시가지인 원정(元町) 일대를 파괴하고 나아가 전조선에 무정부주의사상을 선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상해의 김관선(金官善)과 연락해 폭탄의 밀반입을 추진하던 중 안달득이 절도 혐의로 잡힘에 따라 거사 계획이 드러나, 8월에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오랜 예심 끝에 재판에 회부되어 1927년 7월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91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용곤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