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城壁)』은 시집이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으며, 1부에는 「월향구천곡(月香九天曲)」, 「여수(旅愁)」, 「해항도(海港圖)」, 「전설(傳說)」 등 14편이, 2부에는 「성씨보(姓氏譜)」와 「해수(海獸)」 2편이 실려 있다. 이후 1947년에 「어포(魚浦)」, 「성벽(城壁)」, 「온천지(溫泉地)」 등 6편을 추가하여 총 22편을 게재한 『성벽(城壁)』 재판이 아문각에서 발행되었다. 작품의 표제시인 「성벽」은 1947년 재판된 시집에 처음 실렸다.
『성벽』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봉건적 전통과 관습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 식민지 근대 문명의 퇴폐와 타락,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의식하는 식민지 청년의 비애와 무력감 등이 표현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성씨보(姓氏譜)」에서는 가계와 전통에 대한 불신과 비판 의식을, 「화원(花園)」, 「고전(古典)」에서는 화려한 도시 뒷골목의 전당포와 술집 등의 음울한 풍경이 재현되어 있다. 특히 「해항도」, 「해수」, 「매음부」 등에서는 퇴폐적인 유흥과 윤락의 공간인 항구와 이를 탐닉하는 주인공의 위악적이고 방탕한 모습이 재현되는데, 이런 태도 이면에 시인의 암울한 내면 의식이 놓여 있다. 예를 들오 「황혼(黃昏)」, 「여수(旅愁)」, 「향수(鄕愁)」, 「병실(病室)」, 「호수(湖水)」 등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무력감과 분노, 슬픔과 절망 등 식민지 청년의 비애가 표현되어 있다.
오장환은 1930년대에서 해방 전후까지 활발한 활동을 한 시인으로 『성벽(城壁)』(1937), 『헌사(獻詞)』(1939),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 등의 4권의 시집을 출판했고, 문학론과 수필, 미술 평론 등 다수의 산문도 창작했다. 이 중에서 첫 시집 『성벽』은 1930년대 문학사에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성찰과 비판 의식, 타락한 식민지 근대의 이면에 대한 분노와 저항, 그리고 이런 현실을 깨닫는 무력한 청년의 비애와 자의식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시집으로 평가된다.
『성벽』은 1부와 2부가 시작되면서 판화 「꽃」과 「해변」, 그리고 「밤」이 각각 컬러로 수록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오장환이 당시 친하게 지내던 화가 이병현(李秉玹)과 김정환(金貞桓)의 판화를 시집에 삽입하여 편집한 것이다. 오장환은 자신이 운영하던 ‘남만서점’을 중심으로 당시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는데, 최근에는 이런 활동에 주목하여 1930년대 오장환을 시인에서 출판인, 애서가, 문화 기획자이자 문화 운동가로도 확장,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