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신태건(申泰健)의 아들이다.
1889년(고종 26)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교리·응교를 역임하였다.
1899년 전주군수로 재직하면서 조경단(肇慶壇) 수축에 공을 세웠으나, 공납을 체납한 까닭에 법부의 탄핵으로 면직되고 말았다. 얼마 뒤 사면을 받아 1901년 주차프랑스공사관 3등서기관, 1903년 평양감리를 역임하였다. 1908년에는 규장각부제학에 임명되고 칙임관 3등에 서품되었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