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관 ()

출판
단체
190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출판사.
정의
190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출판사.
연원 및 변천

1907년 여름 최남선(崔南善)이 당시의 서울 남부 상려동(上犁洞)에서 창설하였다. 이 출판사의 업적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여러 종류의 계몽잡지의 발간이다. 1908년 11월최남선이 주재한 우리 나라 최초의 청소년잡지 『소년(少年)』을 발행하였다. 이 잡지는 새로운 형태의 시를 비롯하여 언문일치의 글을 크게 보급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 뒤 1913년 1월 1일에는 어린이 교육잡지 『붉은저고리』를, 1913년 9월에는 이광수(李光洙)가 편집을 담당한 『새별』을, 같은 해 9월 5일에는 월간 소년잡지 『아이들보이』를, 1914년 10월 1일에는 본격적인 대중계몽잡지인 『청춘(靑春)』 등을 계속해 발간하였다.

둘째, 각 분야에 걸친 폭넓은 일반 서적의 간행이다. 즉, 교과서류를 비롯하여 종교서적·지리지도·조선어한문서적·서양서적·이과서적·수학측량서적·어학서적·간독서적(簡牘書籍)·법정서적·경제서적·법전서식서적·실업부기서적·의약서적·문학서적과 사전·자전류, 교육 및 가정서적, 도서 및 습작서적 등 광범위한 출판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9년 2월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교양문고본인 ‘십전총서(十錢叢書)’를 기획, 「ᄭᅥᆯ늬버 유람긔(葛利寶遊覽記)」 등 2종을 발간하였으며, 그 뒤 1913년부터는 ‘륙젼쇼셜문고(六錢小說文庫)’를 기획, 「홍길동젼」을 비롯하여 10여 종의 순국문소설을 발간함으로써 대중을 대상으로 한 문고판 형식의 새로운 출판기획을 시도하였다.

셋째,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편찬한 각종 고서의 간행이다. 예를 들면 『동국통감』을 비롯하여 『해동역사』·『연려실기술』·『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당의통략(黨議通略)』 등 역사와 고문(古文), 고사(古事) 및 당쟁사에 관한 희귀한 서적을 활자판으로 대량 출판하였다.

그리하여 과거 극히 소수의 사대부에게만 국한되어 읽혔던 서적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서적의 대중화를 꾀하였다. 또한, 역사서적뿐만 아니라 『동국세시기』·『열하일기』·『중경지(中京誌)』·『동경잡기(東京雜記)』·『해동소학(海東小學)』·『훈몽자회(訓蒙字會)』·『택리지』·『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동국병감(東國兵鑑)』 등 각종 고전 출판에도 힘을 기울였다.

의의와 평가

신문관은 1910∼1919년까지의 언론·출판·결사·집회 등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은 암흑기에 폭넓은 출판활동을 통하여 잊혀져가는 우리 문화의 발굴, 전승과 창달을 위하여 노력함으로써, 민족정신의 고취와 대중계몽교육의 선구자로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대한제국시대의 출판연구」(최준, 『법정론총』 17, 중앙대학교 법정대학생회, 1963)
「한국의 출판연구」(최준, 『서울대학교 신문연구소학보』 1, 1964)
『일제치하언론출판의 실태』(김근수, 영신아카데미, 1974)
집필자
최준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