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신태관(申泰寬)의 아들이다.
1886년(고종 23) 정시(庭試)에 급제, 출사(出仕)하였다. 사헌부장령을 거쳐 1896년에 중추원1등의관에 올랐다.
1902년에는 왕명을 받들어 수원 부근의 융릉(隆陵)·건릉(健陵) 화령전(華寧殿)을 봉심(奉審)하기도 하였다. 그 뒤 육군법원이사(陸軍法院理事)·규장각직각을 역임하였고, 1905년 11월에는 을사오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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