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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약국
의약학
개념
질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쓰는 물품을 모두 가리키는 의학용어.
내용 요약

약은 질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쓰는 물품을 모두 가리키는 의학용어이다. 원시시대부터 질병을 치료하며 경험을 축적해가는 사이에 약의 체계가 잡혀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약 전문가가 있었고, 고려·조선 시대에는 고유 약재에 대한 연구가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향약은 주로 자연계에서 채취한 물질 원형을 건조·단절·정제한 생약 계통의 약이었다. 특정물질을 추출·합성하여 가공한 화학의약품인 양약은 근대기에 도입되었는데, 이들을 제조하는 제약업은 1945년 광복 이후 발전하여 오늘날 우리는 세계 수준의 제약공업국가가 되었다.

정의
질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쓰는 물품을 모두 가리키는 의학용어.
개설

우리 나라는 약의 개념이 광범위하여 의약품뿐만 아니라 화공약품·농약·화약·구두약 등도 약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의약품에 국한하여 논하기로 한다. 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물질이 약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나 좀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의를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의약품이란 투여를 받은 사람의 생리상태 또는 병적 상태를 수정 또는 검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우리 나라의 <약사법 藥師法>의 제2조 제4항을 보면 “이 법에서 의약품이라 함은 다음 각 호의 하나에 해당하는 물품을 말한다. ① ≪대한약전 大韓藥典≫에 수재된 것, ② 사람 또는 동물의 질병의 진단·치료·경감(輕減)·처치 또는 예방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기구·기계(치과재료·의료용품 및 위생용품을 포함한다)가 아닌 것, ③ 사람 또는 동물의 구조·기능에 약리학적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서 기구·기계가 아닌 것(화장품은 제외한다)”으로 되어 있다.

생명현상은 화학적인 반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모든 생체세포와 조직 또는 생물의 생활기능은 무수한 화학반응체계로 구성되고 있다. 약은 세포의 생활반응에 직접 관여하여 구조와 기능을 개선하는 화학물질이다.

의료의 중심은 약물요법이며 의약학의 최대 목표는 육체와 정신의 병에 유효한 약을 개발하여 활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학의 발전은 약의 개발이 이끌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약은 본질적으로 세 가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① 약은 물질이며 초근목피 등 자연물로 되어 있는 생약(生藥)·합성화학약품·생물학적 약품 등 종류가 많다.

② 약은 생리활성(生理活性)을 지니고 있다. 생체기능의 원활한 운행에 지장이 생겼을 때, 즉 병이 생겼을 때, 생체의 운행을 정상적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작용을 지니고 있는 물질이다.

③ 유용성과 경제적 교환가치가 있는 재화(財貨)이므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약의 상품성은 다른 상품과는 달라서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상품성이 지나치면 의료의 본질을 저해하므로 약의 상품성을 되도록 극소화시키는 것이 의료의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약에 관해서 논하기 위하여서는 약의 기원, 발전의 역사, 약의 종류 및 의료에 있어서의 약물요법이 차지하는 위치, 우리 나라의 의약산업 및 의약제도의 역사와 현황, 민속약(民俗藥)의 역사적 고찰 등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현황보다도 역사적 변천을 통하여 우리의 약과 약물요법 및 약학의약제도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와 아울러 약물요법의 근본개념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약의 과신 또는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생체가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기질적(器質的)으로나 기능적으로 정상이며 환경으로부터의 영향에 대하여 잘 적응할 수 있는 상태가 건강이며, 그렇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생체반응을 나타낼 때에 병이 생겼다고 한다. 즉, 생활기능이 원활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때가 건강이며, 그렇지 못할 때가 병이다.

병이 생기는 원인은 주인(主因)과 유인(誘因)이 있는데, 주인은 병 발생의 불가결한 원인이며, 유인은 보조적인 구실을 하는 원인이며 주로 과로·영양실조·스트레스 등이 이에 해당된다. 아무리 주인이 있더라도 몸의 저항력이 튼튼하면 발병하지 않을 수 있다.

발병의 원인은 또 내인(內因)과 외인(外因)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인은 체내에 구비되어 있는 발병 요인이며 유전적인 것이 많다. 또, 성(性)·연령·영양 상태에 따라서 후천적으로 생긴 체질·면역성·저항력 등이 문제가 된다.

외인으로는 ① 병원체(病原體):기생충·세균 및 기타 병이 생기게 하는 미생물, ② 화학적 작용:유독성 물질, 생리적인 화학물질이라도 지나치게 많을 때, ③ 물리적 작용:기계적·온열적(溫熱的)·광학적 또는 전기적 자극, 기압변동, 방사선 등, ④ 영양섭취의 장해:기아·영양실조(영양부족도 있고 영양과잉도 있으며 요사이는 후자가 많음)·비만증·특수미량 영양소의 결핍 등, ⑤ 정신적 작용:노심초사·스트레스·좌절감 등, ⑥ 원인불명 또는 불확실한 경우 등이 있다.

이와 같이 병이 생기는 원인이 복잡다기하므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만을 일시적으로 없애 주거나 경감시키는 대증요법(對症療法)만이 약물요법의 전부가 아니며 대증요법은 때로는 병의 진단을 그릇되게 하거나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병이 생긴 원인을 따져서 치료를 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법이다.

그러나 대증요법, 예컨대 진통·진경(鎭痙)·진정·최면·해열·강심·흥분 및 각성·이뇨·건위장·최토(催吐)·진토(鎭吐)·설사·설사멈춤·이담(利膽)·거담(去痰)·진해·발한(發汗)·지혈·혈압강하 등으로 우선 급한 증상을 끄면서 원인요법을 하여야 하는 경우도 있으나,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병의 치료법으로는 약물요법이 전부는 아니다. 병이 치유되는 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생체가 지니고 있는 자연치유능력이며, 자연치유능력이 병의 약 75%를 고친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병이 생겼을 때에는 자연치유능력을 북돋워주기 위해 안정과 휴식을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한 약을 잘못 사용하면 자연치유능력을 손상시켜서 고칠 수 있는 병을 못고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약물요법 외에도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① 예방요법, ② 보충요법, ③ 체질개선요법, ④ 유도요법(誘導療法): 피부·폐·위장·신장 등으로 체내의 노폐물 또는 독소를 배설시키는 방법, ⑤ 보호 및 단련요법 등이다.

또, 시술방법에 따라 치료법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약물요법, ② 식사요법, ③ 이학적 요법(理學的療法):광선·전기·적외선·방사선·초단파·사우나 등, ④ 온천·기후요법:온천 또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전지하여 치료하는 법, ⑤ 기술요법:수술·수혈·수액·물리치료 등, ⑥ 정신요법:진정제·수면제·암시요법 등에 의하여 정신을 안정시키는 요법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의식구조는 지나치게 약물요법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으로써 약의 남용과 오용이 범람하고 있으며 더욱이 습관성 의약품 또는 각성제·마약 등의 중독환자가 늘어나고 있어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약은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모두 독성물질이며 그 독성을 역이용하여 병을 고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 이와 반대로 현대 의약품은 독성물질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지나치게 겁을 내는 나머지, 일체 현대의약품의 사용을 기피하고, 민간약이나 건강식품을 생산하여 그것만을 사용하다가 치료의 시기를 놓쳐 불행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연요법이나 식약일체(食藥一體)의 요법도 올바른 현대적 치료체계하에서 함께 이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약의 종류와 분류

수없이 많은 종류의 약을 약효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전신마취제·수면제·진정제·트랭퀼라이저(정신 안정제)·항경련약·진통제·해열제·중추신경이완약·중추신경흥분약 등, ② 체성신경계(體性神經系) 및 골격근(骨格筋)에 작용하는 약:국소마취제·근이완약.

③ 자율신경계 및 평활근(平滑筋:내장의 모든 기관·혈관 등의 벽에 있어 그 운동을 다스리는 힘줄)에 작용하는 약:교감신경흥분약·교감신경억제약·부교감신경흥분약·부교감신경억제약·자율신경절차단약(自律神經節遮斷藥)·진경약.

④ 알레르기에 작용하는 약:항히스타민제, ⑤ 순환기 계통의 약:강심제·심근억제약·부정맥치료약·관상동맥확장약, ⑥ 호흡기관에 작용하는 약:진해약·거담약.

⑦ 소화기관에 작용하는 약:소화약·건위약·제산약·소화성궤양치료약·토제(吐制)·진토제·하제(下劑:설사약)·제담약(制膽藥), ⑧ 비뇨기관에 작용하는 약:이뇨제, ⑨ 성기(性器)에 작용하는 약:피임약·최음약·자궁수축제 등, ⑩ 외피(外皮) 및 점막에 작용하는 약.

⑪ 혈액 및 조혈기계통에 작용하는 약:혈액대용약·조혈약·항응혈약(抗凝血藥)·지혈제, ⑫ 물질대사에 관여하는 약, ⑬ 비타민, ⑭ 호르몬 및 항호르몬제, ⑮ 기생충에 작용하는 약, ⑯ 병원미생물에 작용하는 약, ⑰ 악성종양에 관한 약.

1985년의 현재 우리 나라 329개 제약회사의 총생산액은 1조4476억 원이고 허가품목수는 1만3759개에 달한다.

옛날에는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과 같이 약이 너무 귀하여서 문제가 되었는데 요사이는 반대로 지나치게 범람하게 되어 광고와 가격 등으로 과당경쟁을 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약사용의 일상화와 대량소비를 부채질하고 있어 문자 그대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약을 재료에 따라서 분류하면 생약 계통과 합성 또는 추출하여 만든 화학의약품으로 나눌 수 있다. 생약은 동물·식물·광물의 자연계에서 채취된 것으로 원형대로 건조·단절(斷切) 또는 정제하여 만든 의약품을 말하며, 한약이 이에 속한다. 의약품의 제제(製劑)라 함은 의약품을 가공하여 복용하는 데 편리하도록 만든 것이다.

제제를 제형(劑型)에 따라 분류하면, 경고제(硬膏劑)·과립제(顆粒劑)·로션제·리니멘트제·리모나데제·방향수제(芳香水劑)·산제(散劑)·시럽제·안연고제(眼軟膏劑)·액제·엑기스제·엘릭실제(elixer劑)·연고제·유당제·유동엑기스제·유제(乳劑)·현탁제(懸濁劑)·점안제(點眼劑)·정제(錠劑)·좌제(坐劑)·주사제·주정제(酒精劑)·침제(浸劑)·전제(煎劑)·파스타제·카타플라스마제·캡슐제·트로키제·팅크제 등이 있다.

또 <약사법>의 분류에 따라 매약(賣藥)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 또는 동물의 구조·기능에 위해를 가할 염려가 적으며 사용법 또는 사용량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의약품으로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약전약(藥典藥)이라 함은 그 나라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의약품에 대하여 정부가 품질·강도(强度) 및 순도의 기준을 정하고 있는 ≪대한약전≫에 수재되어 있는 의약품이다.

또 약의 위험성에 따라 극약, 독약, 중독성·습관성 의약품 등의 구별이 있으며, 독약 및 극약은 극량(極量)이 치사량에 가깝거나 축적작용이 강하거나 약리작용이 강렬하여 사람 또는 동물의 구조·기능에 위해를 가하거나 가할 염려가 있는 약으로, 지정되어 있다. 독약은 극약보다도 더 독성이 강한 것이다.

중독성·습관성 의약품은 인체에 작용하여 중독성이나 습관성을 일으킬 염려가 있는 의약품으로 역시 품목이 지정되어 있으며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고는 저장이나 판매를 못하게 되어 있다.

아편·모르핀·코카인 등과 그 유도체는 습관성과 탐닉성이 있으며 사용을 중단하면 격렬한 금단증세가 생겨서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고 드디어는 몸과 마음이 황폐하게 되어 패가망신하고 사회에까지 크게 누를 끼치기 때문에 마약으로 지정하여 <마약법>으로 엄중하게 단속하고 있다.

마약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남용에 의하여 습관성이 생겨서 정신적 및 육체적 금단현상이 생길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向精神性醫藥品)도 따로 지정된 것이 있다. 필로폰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밖에 마취작용 및 환각작용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대마초를 단속하기 위한 특별한 법도 제정되어 있다.

약의 기원

동물들도 병이 생기면 치료본능을 발휘하여 외부의 상처이면 혓바닥으로 핥고, 속이 거북하면 풀을 뜯어 먹어 구토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아무리 원시시대라고 하여도 질병에 대한 치료본능이 없었을 리가 없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의 주변에서 먹을 것을 찾게 되고, 또 자연의 섭리가 먹을 것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병이 생기면 주변의 자연물 가운데 병을 고치는 약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민족이나 약을 처음으로 개발한 약조신(藥祖神)을 가지고 있지만, 꼭 어느 한 사람이 약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오랜 원시시대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본능적 직관과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의 축적이 드디어 약의 체계를 세우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태여 중국 전설의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의 <상백초설화 嘗百草說話>를 빌려올 필요가 없다. 우리의 국조인 환웅(桓雄)이 이미 ‘신시의학(神市醫學)’을 실천하였고 곰[熊]이 사람으로 변하게 하기 위하여 쑥[靈艾]과 마늘[蒜]을 먹게 한 것이 고기(古記)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삼국유사≫에서 인용하고 있다. 고려 말엽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에서는 그런 사실을 아예 ‘음약성인신(飮藥成人身)’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 본초학(本草學)의 가장 오래된 고전인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에도 실려 있지 않은 쑥과 마늘을 우리는 이미 단군 건국시대에 사용하였다는 사실로 보아 우리의 약이 중국 본초학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자체의 고유문화를 유지하면서 중국에서 흘러들어 온 대륙문화를 받아들여 혼화양성(混和釀成)한 것을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에까지 수출한 사실을 찾을 수 있다. 당나라의 왕주(王籌)가 저술한 ≪외태비요방 外台秘要方≫에 고구려의 약방문인 ≪고려노사방 高麗老師方≫이 인용되어 있고 ≪백제신집방 百濟新集方≫·≪신라법사방 新羅法師方≫ 등의 약방서(藥方書)도 일본의 ≪의심방 醫心方≫에 인용되고 있음을 볼 때 이미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우리의 독자적인 약학이 발전되어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아울러 우리의 약재도 수출되었을 것이고, 약재의 산출지로서 고구려·백제 및 신라가 중국의 본초서에 올라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교류의 역사가 모두 산일되어 우리의 문헌으로는 고증할 길이 없고 겨우 중국 및 일본의 자료에서 찾는 도리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스스로의 의약학을 수립하기 위하여 백제 성왕 때에 의박사 나졸왕유릉타(奈卒王有陵陀)와 채약사(採藥師) 시덕반량풍(施德潘量豊)과 고덕정유타(固德丁有陀)를 초빙하여 가는 동시에 사신을 백제에 파견하여 각종 약재를 구해간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써 백제에는 이미 의학과 약학의 전문가가 분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은 12세기에 의약분업이 되어 있었음을 자랑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미 삼국시대에 이룩된 것임을 볼 때 우리의 약학이 얼마나 일찍부터 전문화되어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채약사라는 직제는 직명 그대로 채약만을 관장한 것인지, 또는 약초에 관한 일체를 담당하였지만 그 직무의 중점을 표시하는 뜻으로 채약이라는 직명을 붙인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김두종(金斗鍾)은 ≪한국의학사 韓國醫學史≫에서 논하고 있다.

원래 약초를 취급할 때는 무엇보다 채집이 가장 중요하며 만일에 채집의 시기가 부적당하거나, 채집 뒤의 저장방법이 불완전하면 약효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으며, 약초에 따라서는 채집할 때에 필요로 하는 채집 부위를 구별하는 등의 전문지식이 요청된다.

이러한 채약의 직무는 약물의 성능 감별에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며 우리의 채약사가 그와 같은 본초학의 전문가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본초경집주 本草經集註≫나 ≪신수본초 新修本草≫에 고구려와 백제의 약재가 기재되어 있다. “인삼(人蔘)·금설(金屑)·세신(細辛)·오미자(五味子)·관동화(款冬花)·곤포(昆布)·여여(䕡茹)·무이(蕪荑)·은설(銀屑)·백부자(白附子)·오공(蜈蚣)”의 11종이다.

흥미로운 것은 ‘金屑’인데 “凡金屑辟惡而有毒 不鍊服之 殺人 高麗扶南及西域 外國成器 鍊熟可服”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당시 우리의 약재로는 초근목피(草根木皮)뿐만 아니라 연금(鍊金)된 금속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연금술이 부남(扶南) 및 서역(西域) 등과 아울러 우수하였다고 한 것은 연금법이 중국에서는 발달되지 못하였으며 고구려의 연금법이 중국에서 전승된 것이 아니라 부남이나 서역, 즉 인도와 이웃했던 지역에서 발달된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되지만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남방산 약재가 신라에 도입되었으리라는 흔적을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시대의 골품(骨品)의 계층에 따라 사용한 장식품 중에 남방 열대산의 물품이 많으며 그 중에서 본초학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는 ‘조서(鳥犀)·자단(紫檀)·침향(沈香)·자(柘)·목숙(苜蓿)’ 등이 있다.

그 밖에도 페르시아·아랍 등과도 당나라가 교역하였으므로 간접적으로 신라에도 외국산 약재가 전해지고 그런 약품들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외국의 의약지식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신라산의 약재로서 중국 및 일본의 문헌에 소개된 것으로는 인삼을 비롯하여 ‘남등근(藍藤根)·대엽조(大葉藻)·곤포(昆布)·백부자(白附子)·토과(土瓜)·박하(薄荷)·형개(荊芥)·국(菊)·해석류(海石榴)·해홍화(海紅花)·가자(茄子)·석발(石髮)·해송자(海松子)·도(桃)·진자(榛子)·온눌제(溫肭臍)·위령선(威靈仙)·신라양지(新羅羊脂)’ 등을 들 수 있다.

신라인삼은 당나라와의 수호적 증품(贈品)으로 중요하였으며, 우황(牛黃)도 신라산이 인삼과 더불어 외국사절들의 귀중한 증품으로 되어 있었다.

고려시대에 송나라·원나라의 본초학을 도입한 사실은 송나라의 신종(神宗)이 우리 나라 문종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당시 중국의 표준약재라고 볼 수 있는 약재 100품을 보내오는 동시에 송나라의 의관을 초청하여 우리의 의약교육에 종사시킨 일들로부터 알 수 있다.

또, 송나라가 중국의 본초학서를 고려의 간행본에서 구해간 사실을 보아도 당시의 우리 나라 본초학의 연구가 얼마나 활발하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본초학이란 오늘날의 약물학(藥物學)을 뜻한다.

송나라·원나라를 통하거나, 또는 직접 아랍(大食國)의 약재인 ‘몰약(沒藥)·유향(乳香)·용연향(龍涎香)·소합향유(蘇合香油)·목향(木香)·정향(丁香)·안식향(安息香)’ 등이 고려에 도입된 사실 및 ≪회회약방 回回藥方≫ 36권이 도래되었던 사실로 보아 우리의 본초학이 아랍 약학기술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며, 그와 같은 여러 가지 기술과 학문을 융합시켜 우리에게 알맞는 약학을 이룩하였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고려 고유의 약물학은 ≪향약고방 鄕藥古方≫·≪고전록험방 古傳錄驗方≫·≪향약구급방≫ 등으로 취합, 간행하였으나 모두 산일되어 찾을 길이 없고 겨우 조선시대에 복간된 ≪향약구급방≫이 그나마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것의 영인본으로 엿볼 수 있을 따름이다. 향약이란 우리 고장에서 산출되고 우리가 개발한 약재라는 뜻으로 약의 자주성을 나타낸 말이다.

≪향약구급방≫ 방중향약목(方中鄕藥目)에서 당시에 사용되었던 향약 170여 종이 수재되어 성상 및 채취법이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향약명이 이두로 병기되어 있음은 우리의 고유 본초학 발전사상 획기적인 자료라고 아니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이와 같은 향약본초학이 세종의 향약정책에 의하여 한동안 크게 발전하였으나 연산군 이후부터 향약을 버리고 사대적인 외래약재[唐材藥]를 숭상하는 바람에 쇠퇴하게 되었다.

세종의 향약정책

세종대왕은 의·약학에 있어서도 눈부신 자주적 발전을 가져왔다. 의·약학을 나라의 실정에 적합하도록 발전시키기 위해 의·약제도 전반에 걸친 정비 확충을 비롯하여 의·약학의 장려책을 강구하였다. 이와 아울러 약재의 국산화와 자급자족을 꾀하는 향약자립정책을 수립하여 의료의 자립화를 이룩하였다.

그것은 종래 명나라 약재 의존을 탈피하고 자주적인 약재 자급책을 수립하여 국비유출을 막는 동시에 우리 나라 사람의 병 치료에는 우리의 체질에 적합한 향약이 더 효과적인 점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향약의 이용을 장려하고, 향약의 재배와 증산 및 자급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전문학자를 명나라에 파견하여 향약과 당약의 품질과 약효를 비교하고, 당약을 대치할만한 향약을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동시에 전국에 걸쳐서 약재의 자생(自生) 및 재배상황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묶어서 ≪세종실록≫ 지리지를 간행하고, ≪향약본초 鄕藥本草≫·≪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 등 향약을 이용하는 약방서를 편찬, 출간하였다.

또한 향약채취의 적정한 시기 및 방법을 지도하는 ≪향약채취월령 鄕藥採取月令≫을 간행하는가 하면 희귀 수입약재인 용뇌(龍腦)·사향(麝香)·주사(朱砂)·소합유(蘇合油) 등의 사용을 제한시켰으며 남방 열대산 약재인 안식향·영릉향(零陵香) 등을 제주도 등에서 재배 또는 대용품 개발의 시험연구를 실시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시책 중에서 향약과 당약을 비교, 검토시킨 결과를 보면 1423년 계묘 3월조의 ≪세종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大護軍 金乙玄, 司宰副正 盧仲禮, 前敎授官 朴堧等 入朝質疑, 本國所産 藥材六十二種, 內與中國所産 不同, 丹參·漏蘆·柴胡·防己·木通·紫莞·威靈仙·白歛·厚朴·芎藭·通草·獨活·京三稜十四種, 以唐藥比較 新得 吾者六種, 命與中國所産不同鄕藥, 丹參·防己·厚朴·紫莞·芎藭·通草·獨活·京三稜 今後勿用”

62종의 향약을 휴대하고 명나라에 가서 대조시험을 하여본 결과 ‘단삼(丹蔘)·방기(防己)·후박(厚朴)·자완(紫莞)·궁궁(芎藭)·통초(通草)·독활(獨活)·경삼릉(京三稜)’의 8종 향약은 사용할 수 없음을 알았다는 내용인데 오늘날의 과학적 생약학에서도 위 8종의 생약은 기원식물이 모두 일정하지 않아 문제가 많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당시의 감정이 꽤 정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30년에도 다른 약에 대해서 대조시험을 한 기록이 있다. 남방계 약재인 안식향의 대용품으로 제주도의 붉나무(궂나무과의 작은 낙엽 활엽 교목) 수지(樹脂)를, 영릉향도 당약 대신에 제주도산을 사용하도록 <제주도소산 약재진상법>을 제정한 것 등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 나라의 약재자원조사를 실시한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한반도에서 산출되는 생약자원의 분포상태가 일목요연하게 나타나 있다. 조사된 생약은 303종이며, 그 중 식물성 생약 243종, 동물성 생약 46종, 광물성 생약 14종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날 보아도 가치 있는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500년 전의 세종약학이 얼마나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이며 과학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일본의 의·약학이 백제 때에 우리 나라에서 도입된 의·약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자타가 같이 인정하는 바이며, 그 뒤에도 중국 대륙과 직접 교류를 하면서 다소 길이 넓어지기는 하였으나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의·약학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의 향약본초서 및 향약의방서가 일본에서 활용되는 가운데 우리의 향약명을 잘못 인용하여 오기(誤記)한 것이 지금도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이두로 된 향약명을 뜻을 모르고 그냥 전사(轉寫)하다 보니 그와 같은 착오가 생긴 것이다. 이두는 한자를 빌려 쓰기는 하였으나 우리가 읽는 음과 훈을 모르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한자만을 베껴쓰다 보면 그런 실수가 생긴다.

우리 나라 약학발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항이 인삼의 약효연구 및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약성론(四象藥性論)이다.

민간약

한방약이나 민간약이 모두 오랜 경험을 통한 전승약(傳承藥)이라고 하는 점은 공통이지만 민간약은 오로지 경험적일 뿐 이론적 체계가 없는 반면에 한방약은 경험의 기반 위에 체계 있는 이론을 수립하고 있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모든 의약의 기원이 민간약에서 출발되었으며 민간약이 전승되어 내려오는 가운데에서 도태되고 세련되어 집대성된 것이 본초학이고 본초학이 다시 한방의학적 원리에 따라 체계화된 것이 한방약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과학적인 합성의약품도 기원을 따지면 민간약에서 출발한 것이 적지 않기 때문에 민간약이야말로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소중한 발상자원이 될 수 있다.

실제로도 현대 약학에서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는 확률이 이론적인 과학적 접근보다는 민간약을 검토하는 방법이 보다 더 크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어 선진국들이 후진국 또는 발전도상국가들에서 아직도 실천되고 있는 민간약을 연구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경험의 소산이라 하여 모든 민간약이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샤머니즘의 미신에 기원을 둔 황당무계한 것도 많다. 사이비 치료술자들이 민간약의 허울 속에서 자기네들의 이른바 비방(祕方)이니 묘방(妙方)이니 하는 것을 감추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민간약 중에는 순전히 주술(呪術)·호부(護符), 또 플라세보(placebo:僞藥, 즉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약) 구실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연구대상으로 삼아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되겠다.

그러므로 민간약을 수집하는 과정에서는 치밀한 취사선택이 있어야 한다. 민간약을 발굴·정리·검토를 통하여 과학화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이지만 위와 같은 고려 없이 무분별해서는 안 된다.

민간약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민간약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① 민간약이 되는 재료는 생활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문자 그대로 우수마발(牛溲馬勃), 즉 소오줌이나 말똥 같은 우스운 것이 약이 된다는 식의 것이다.

② 작용이 대체로 완화하고 격렬한 것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도 있어서 과학적으로 볼 때 위험천만한 것을 겁 없이 투약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③ 합리적인 것도 있는 반면, 불합리한 것도 많다.

④ 민간약은 모든 질병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 그 종류가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현대 의약으로서는 속수무책인 병에 대해서도 특효약이 있다고 과장을 한다. 암·심장병·정신병·신경통·당뇨병 등에 대한 민간약이 유포되어 있어 환자들의 심리적 약점에 편승해 현혹과 맹신을 자아내어 쓸데없는 낭비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치료를 희생시키는 일조차 있다.

더구나 요즘 과학적인 임상연구결과가 있는 것처럼 허위선전을 하는 것도 있다. 민간약에 상업주의가 뒷받침이 되면 그와 같은 위태로운 유행이 유포될 수도 있다. 민간약을 현대 약학적으로 엄격하게 검토, 연구함으로써 취사선택을 하여 올바른 생약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사명이 바로 약학의 당면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그와 같은 목적과 사명을 위하여 운영되고 있는 기관이 서울대학교 생약연구소이다. 동서양 또는 선·후진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이든간에 전승되는 민속이 있는 이상 반드시 민간치료법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의료구조가 전승치료법과 현대의학의 이중구조 가운데 성립되어 있지만 문제는 어느 것이 주동적인가 하는 데에 그 나라의 보건발전도가 달려 있다.

요즘 우리 나라의 국민보건이 향상되어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상병구조(傷病構造)에 변화가 생겨 종전의 감염병시대는 거의 지나가고, 주요 사망원인이 만성퇴행성질환(慢性退行性疾患)인 이른바 성인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병들은 적확한 특효약이 없고 만성인 경과를 취하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민간요법을 이것저것 실천해 보기 쉬운 상황 아래 있다.

더군다나 경제성장으로 윤택하게 된 탓으로 보건을 위하여 지출하는 경비가 늘어감에 따라 민간약을 주축으로 하는 건강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그러므로 민간약 또는 민간요법을 우리의 생활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약과 약물요법의 특성

현대 의약품의 놀라운 발전이 감염병을 극복하고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약의 긍정적인 이득이 있는 반면, 반드시 부정적인 약해(藥害)가 있게 마련이다. 약을 잘못 써서 생기는 약원병(藥原病), 의료를 잘못하여 생기는 의원병(醫原病)이 늘어가고 있다. 약은 원칙적으로 인체에 대하여 이물(異物)이며 독성물질이다.

옛날 약은 효과도 신통하지 않은 반면 독성에 의한 부작용도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의 화학적인 약은 효과가 정확한 만큼 독성도 예리하다. 마치 무기(武器)와 같아서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부득이 뽑아들어야지 함부로 휘두르다가는 크게 다친다.

약은 유효성과 안전성의 두 개의 바퀴 위에서 전진하는 존재이다. 약으로 인정되려면 표방하고 있는 약효가 틀림없어야 하는 동시에 치료를 위험성 없이 할 수 있는 안전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약을 개발하여 실용화하려면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며 제약 허가에는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임상실험결과와 안전하게 투약할 수 있는 안전성의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국립보건원과 국립보건안전연구원 및 보건사회부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관리하고 있다. 이미 제약이 허가되어 있는 의약품일지라도 의약의 발전과 더불어 약효나 안전성에 대한 기준이 변동되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마다 약효 재평가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약은 일반 소비재 상품과는 다르게 ① 생명관련성, ② 고품질성, ③ 공공복지성, ④ 고도의 전문성, ⑤ 외관상 상품특성의 비명시성(非明示性), ⑥ 상품차별성 전달의 곤란성, ⑦ 다종다양성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약은 유통구조나 유통질서 또는 과대광고나 난매(亂賣) 등 조건에 따라서 약의 남용과 오용이 생길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러므로 일반 소비재 상품과는 구별하여 초상품(超商品)으로 특별한 유통구조와 질서 또는 윤리 가운데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 의료구조는 의료공급자가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약의 남용 및 오용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약물의존성이 생기는 문제이다. 의존성은 마약이나 습관성 의약품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흔히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구입하여 복용하는 진통제나 두통약 등에 의해서도 생긴다.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위장·신장·간장·조혈(造血) 등의 기능을 손상시키며 정신적 의존성이 생겨서 약을 지니고 다녀야 안심이 되는 심리상태가 된다. 그 단계가 지나가면 육체적 의존성이 생겨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육체적 고통이 생기며 약을 먹어야 고통이 멈추는 단계가 된다. 이와 같은 두 단계를 거치면 완전한 약물중독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임신중의 복약으로 태아형성에 미치는 영향, 항생제의 남용으로 내성균(耐性菌)의 조성, 균교대현상(菌交代現象), 태아에 미치는 해독 등이 생긴다.

이와 같은 문제를 방지하려면 의약품을 공급하는 전문가들이 소비자인 국민들을 올바르게 지도, 계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근래 발전되고 있는 임상약학(臨床藥學, clinical pharmacy)에 의하면 복용한 약의 체내에 있어서의 흡수·분포·배설, 즉 약물대사속도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복용하는 사람의 체중·체질·연령 등을 고려하여 투약하는 약용량과 투약횟수를 정확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일반대중은 대수롭지 않게 어림짐작으로 약을 복용하는 의식구조를 지니고 있어 우려가 된다.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약(新藥)은 장기적인 안전성 평가가 이룩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역효과(adverse drug reaction)가 생기는 수가 있다.

그것을 적발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약부작용 모니터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소비자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겼을 때에 보건기관에 알리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한약이나 생약은 안전하여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과신하는 경향이 있으나, 약의 종류에 따라서는 화학약품 못지 않게 독성이 강한 것도 있고, 자기의 병증에 적합하지 않은 약을 쓰면 부작용이 생긴다.

약효문제에 있어서 약효를 어떻게 검정하느냐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몇몇 복용자의 체험담만으로는 약효를 인정할 수 없다. 약효가 나타나는 데는 심리작용, 자연치유능력, 자기가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조건 등이 복잡하게 관여하기 때문에 통계적인 유의성(有意性)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을 사용한 실험군(實驗群)과 약을 사용하지 않은 대조군(對照群)의 비교결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피시험자가 약을 복용한 것에 대한 심리적인 영향을 없애기 위해서 실험군이나 대조군이 지금 자기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를 모르게 하는 ‘맹검시험(盲檢試驗)’이어야 하며, 이 경우에도 실험을 하는 의사가 지금 자기가 누구에게 무슨 약을 주었는지 모르게 하는 ‘이중맹검법’을 실시해야 더욱 안전하고 확실하다.

약에 대한 올바른 인식

약의 남용과 오용 또는 보약숭상(補藥崇尙) 등은 약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인식에서 생겨난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은 대체로 약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약은 모두 고마운 것이고 약은 먹을수록 몸에 이로운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지니고 있다. 약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서는 그와 같은 잘못된 인식을 고쳐나가도록 하여야 하겠다.

약을 과신하게 된 이유는 ≪신농본초경≫에 모든 약을 상약(上藥)·중약(中藥)·하약(下藥)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약의 삼품분류(三品分類)의 사상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상약은 “主養命 無毒 多服不傷人”, 중약은 “主養性 有毒無毒 斟酌其宜”, 하약은 “主治病 多毒 不可久服”이라고 되어 있는데, 모든 약은 전부 상약이라고 과대평가하는 데 문제가 있다.

더군다나 현대의 의약품은 거의 전부가 하약에 속하며 모두 독성물질이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극히 조심하여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을 상약처럼 생각하여 전연 독성이 없고 아무리 계속해서 많이 먹어도 좋으며 생명을 북돋워주는 이득이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는 데 잘못이 있다.

그래서 보약도 아닌 것을 보약이라고 과신하여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가 하면 보약의 약해에 의해 도리어 건강을 해치기까지 하니 한심한 일이다. 옛 글에 “병은 사람을 죽이지 않으나 약은 사람을 죽인다.”라는 말이 있다. 병이 생기면 자연치유능력은 어떻게 해서라도 병을 낫게 하려고 애쓰는데, 약을 잘못 쓰면 도리어 생명을 잃는 수가 있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보약을 하도 좋아하는 나쁜 습성을 보다 못하여 옛 사람도 여러 가지 좋은 경계의 말을 남기고 있다. “무슨 보, 무슨 보 하여도 식보(食補)가 제일이니라.”, “약보(藥補)는 불여(不如) 식보(食補)니라.”, “나랏님 약 없어 죽었나.” 등은 보약을 믿는 허망한 의식구조를 경계하는 말이다.

허준은 ≪동의보감≫에 “의사는 병의 근원을 밝혀서 어디에서 병이 생겼는가를 알고 난 뒤에 식이요법으로 고치도록 하고 그것으로 안될 때에 약을 쓰도록 한다(醫者先曉病源 知其所犯 以食治之 食療不愈然後命藥).”라 했고 “가난하여 돈이 없는 사람은 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도록 하여야 한다(窮乏無財者 俱宜以飮食調治也).”라고 하였다.

요사이 모든 성인병이 올바르지 않은 식생활에서 생긴다고 하여 식원병(食原病)이라고까지 하는데 식생활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약만으로 고치려는 것은 도리어 병을 악화시키게 된다. 근세에 와서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우리의 실학자들은 입을 모아 보약의 그릇된 인식을 계몽하기에 앞장을 섰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우선 박제가(朴齊家)의 저서인 ≪북학의 北學議≫에서 쉽사리 찾을 수 있다. 서명응(徐命)이 쓴 서문 가운데 “그렇게 해서 병이 났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如此是病 不如此是藥).”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라의 정치를 병 고치는 것에 비유해서 한 말이지만 병도 그렇고, 나라 다스리는 것도 잔 재주의 대증요법(對症療法)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일 것이다.

<은 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귀중한 은을 낭비하여 외국에서 약재를 사들여다가 소비하는데, 약은 복용하여 반나절이면 소화되어 없어지는데 그런 것을 사들여오기 위해 나라의 재원인 소중한 은을 외국에 내보내서 되겠는가.”라는 대목이 있는데 귀중한 외화를 낭비하면서 정력제 따위의 외국약을 수입하는 오늘의 실정에도 경고의 말이 되겠다.

또 <약 藥>이라는 글에서도 정체불명의 외국약재를 숭상하여 사들여오는 것을 비꼬았고, <기천영명 祈天永命>이라는 글에서는 장생불로를 하늘에 기도드리는 것보다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곡식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 국민들이 건강하게 사는 길이라고 갈파하였다.

역시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의 ≪민옹전 閔翁傳≫이라는 한문소설 가운데에서 보약을 통절하게 비꼰 대목이 있는데, 이가원(李家源)의 번역문으로 읽어보면, “……‘불사약(不死藥)이야 영감님이 결코 못보셨겠죠?’ 하였다. 민영감은 ‘이거야말로 내가 아침저녁으로 늘 먹는 것인 만큼 어째서 모르겠수. 저 크나큰 구렁에 서리서리 굽은 솔에 달콤한 그 이슬이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든 지 천년 만에 복령(茯苓)이 되어 있고, 인삼이 많건마는 신라의 토산품이 세계에 으뜸되어 그 모양은 단정하고 땋은 머리는 아이처럼 생겨 있고, 구기(枸杞)는 천년 되면 사람보고 짖는다우. 그러나 그 세 가지 약을 내 일찍이 먹고 나서 다시금 음식을 못먹은 지 백일 만에 숨결이 가빠서 미구에 죽게 되었을 때, 이웃집 할미가 와서 보곤 ‘그대의 병은 주림에서 났음이니, 옛날 신농씨가 온갖 풀을 다 맛보아 비로소 오곡을 뿌렸으니, 대체로 병을 다스림엔 약을 쓰고, 주림을 고치는 데는 밥이 으뜸인즉, 이 병은 오곡이 아니고선 치료하긴 어렵네.’ 하고 탄식을 거듭하기에 ‘나는 그제야 기름진 쌀로써 밥을 지어먹고는 죽기를 면하였으니, 이로 보아선 불사약 치고는 밥만한 게 전혀 없음을 알고 나는 아침에 한 그릇 저녁이면 또 한 그릇 먹고서 이젠 벌써 일흔 살 남짓이 살았다우.’ 하고는 껄껄댄다.”고 쓰고 있다.

이런 글들을 보면 그 당시에도 얼마나 보약을 숭상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정약용(丁若鏞)이 쓴 ≪의령 醫零≫의 잡설(雜說)에 “我邦淸心丸天下有名, 然世豈有三十餘種合成一丸而得其力者大抵有淸凉之功 或中暍氣實者可服, 愚俗認作起死回生之藥 過矣”라고 하여 우리 나라의 유명한 청심환은 먹어서 속이 시원한 약일 뿐인데, 그것을 마치 기사회생하는 약처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꼬고 있다.

우리 나라 우황(牛黃)이 가장 품질이 좋기 때문에 우황청심환은 우리 나라 것을 구하려고 당시의 중국 사람들이 야단이었는데 요사이는 중국제를 사느라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어이가 없다. 소합원(蘇合元)을 먹어서 체한 것을 내려가게 하려면 차라리 생강 따위를 씹는 것이 낫다고도 하고 있다.

약의 근대화 역사

강화도조약이 비록 수동적이기는 하였으나 쇄국의 장벽이 무너지자 외국공관의 설치와 아울러 근대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외교·통상·선교와 아울러 의·약인의 왕래 및 현대의학의 병원이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외국인이 경영하는 서양의학 병원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환자도 받아들여 진료를 베풀었기 때문에 점차 서양의술과 현대약물의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효가 늘었다.

그러나 생소한 서양의술과 양약에 대한 인식이 급작스럽게 높아진 계기는 1884년 10월 17일에 우정국 낙성연에서 발단된 이른바 갑신정변이 도화선이 되었다. 자객의 습격으로 인상(刃傷)을 입은 금위대장 민영익(閔泳翊)을 미국 공사관 소속의 선교사인 알렌(Allen,H.N.)이 치료하여 성공적으로 생명을 구해낸 것이 계기가 되어, 갑신정변은 서양의술을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듬해인 1885년에 정부는 한성북부의 재동(齋洞)에 왕립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을 설치하여 알렌으로 하여금 원장이 되어 운영하게 하고, 약품과 의료기계는 국비로 미국에서 구입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한·미 양국간의 공적인 의약품거래의 효시가 된다(광혜원은 얼마 안 가서 제중원으로 개칭되었다).

이보다 몇 해 앞선 1897년에 지석영(池錫永)이 부산에 있는 일본 제생병원(濟生病院)에 가서 2개월간 우두종법(牛痘種法)을 실습받고, 그 해 12월에 충주군 덕산면(德山面)에서 40여 명에게 종두를 실시한 것이 우리 나라에서 공적으로 종두를 실시한 최초가 된다.

그러나 사실은 정약용이 1835년에 중국에서 전래된 ≪우두종법서 牛痘種法書≫를 입수하여 그 방법을 배워서 종두를 실험하였으나 비공식적인 것에 그치고 널리 유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석영보다 빨랐으나 우두종법 실시와 우두묘(牛痘苗) 제조의 시초라고 내세우지 않고 있다.

지석영은 1880년에 수호사(修好使)의 수행원으로 일본 동경에 가서 내무부 소속 위생국의 우두종계소(牛痘種繼所)에서 두묘의 제조법을 습득하고 돌아왔으니 우리 나라의 생물학적 제제인 백신 제조의 시초가 된 것이다.

1895년 6월 22일에 개화당의 새로운 정부가 성립되면서 이른바 갑오경장을 통하여 우리 나라의 모든 체제를 근대화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이에 따라 의약관계의 제도도 개혁되기 시작하여 약제사(藥劑師)·약제관(藥劑官)·약제사(藥劑士)·제약사(製藥師) 등의 직명이 생겨났다. “제약사는 각양(各樣) 약료(藥料)를 검사하며, 제약법과 화약법(化藥法)을 습득하게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키기까지에는 허다한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듭하였으니 약 관계의 전문직 명칭만 보더라도 약제사·약제관·약제사(藥劑士)·제약사·제약관 등이 있었고, 의약품의 분류도 양약(洋藥)과 한약(韓藥), 양약과 토약(土藥), 서약(西藥)과 한약(漢藥) 등으로, 약을 다루는 업소도 양약국(洋藥局), 한약국(漢藥局)·양약소(洋藥所)·한약소(漢藥所)·약포(藥鋪)·약관(藥館)·약방(藥房) 등으로 잡다하였다.

1899년 7월 6일자 ≪황성신문 皇城新聞≫ 152호에 “관리병원을 설시하고 빈궁자를 의치(醫治)하였는데 6월삭(朔) 병자 중 양약 시치수(試治數) 515인, 한약(韓藥) 시치수 230인”이라는 대목이 있음을 보아 당시의 양약 보급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1910년에 현대 약학교육을 실시하는 약학과(藥學科)의 설치가 대한의원(大韓醫院)에 부설되었고 교육연한 3년으로 졸업 후 약학진사(藥學進士)의 칭호를 수여한다고 규정되었으나 약학과는 유산이 되고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당시 일본에서 약학교육을 받고 돌아온 유세환(劉世煥)이라는 약제사가 있어 대한의원 교수 및 의관(醫官)까지 지냈으나 우리 나라가 일본에 강점당하자 깨끗이 관직에서 물러나 서울 종로3가에서 인수당약국(仁壽堂藥局)이라는 우리의 최초의 약사 약국을 열고 약사 본연의 천직을 지키다가 1917년에 죽은 선구자가 있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

일본에 병탄당하자 점차 일본제 매약이 우리 나라를 휩쓸게 되어 약업 모리배들의 시장으로 변하면서 우리 나라의 양약의 발전이 시작되게 된다.

당시의 일본인의 ≪약제지 藥劑誌≫라는 약업관계 전문지에 “약종매약영약(藥種賣藥營藥)은 무제재(無制裁)이며, 매약(賣藥)은 인지불용(印紙不用)이고, 청매(請賣)·행상(行商) 모두 무감찰(無鑑札)·조제(調劑)까지도 면장불용(免狀不用)이며……소매(小賣)는 모두 정가(定價)의 2 할증판매(割增販賣)이다. 한국부인(韓國婦人)의 묘령자(妙齡者)는 외출(外出)조차 싫어하기 때문에 외국약품(外國藥品)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인용매약(婦人用賣藥)은 무망(無望)이고, 일반적으로 한국인(韓國人)에게 맞는 매약(賣藥)은 위병약(胃病藥)·독약(毒藥)·훈독약(薰毒藥)·생식기약(生殖器藥)·안병약(眼病藥)·임병약(淋病藥)·기부약(氣附藥:기절에서 깨어나는 약)·하제(下劑)·담해약(痰咳藥)·외용고약(外用膏藥) 등이며, 모두 병에 담아 외부로 보아 환약(丸藥)인지 산약(散藥)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가장 필요하며……”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아도 당시 약업의 난맥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약종상·약방·매약청매상 등이 생겨나기 시작하여 양약을 취급하였고, 드디어 민병호(閔並浩)가 우리 나라 최초로 1897년에 양약에 의한 제약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속 발전되고 있는 동화약품주식회사의 활명수(活命水)이다.

이어서 이경봉(李庚鳳)의 제생당약방(濟生堂藥房)이 생겨서 청심보명단(淸心保命丹)을 개발하여 당시 일본에서 들어와 판을 치던 인단(仁丹)과 경쟁을 벌여 인기를 끌었다. 이응선(李應善)의 화평당약방(和平堂藥房)이 팔보단(八寶丹)·자양환(滋養丸)·태양조경환(胎養調經丸)·회생수(回生水)·소생단(蘇生丹)·하리산(下痢散)·급체쾌통산(急滯快通散) 등의 가정용 매약을 제조, 판매하였다.

이어서 천일약방(天一藥房)이 1913년 설립되어 가전(家傳) 비방이던 됴고약(趙膏藥)을 중심으로 한방 고방(古方)을 매약으로 만들어 크게 발전하였고, 조선매약사(朝鮮賣藥社)는 영신환(靈神丸)·사향소합환(麝香蘇合丸)·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포룡환(抱龍丸)·연령고본단(延齡固本丹)·조경종옥환(調經種玉丸)·칠제향부환(七製香附丸) 등의 매약으로 크게 성공하였는데, 영신환은 날로 수요가 늘어서 드디어는 중국·만주에까지 대량 수출하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일본의 매약류 또는 미국의 매약까지 겹쳐서 한때 매약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매약, 그나마도 한방 고방을 매약화한 진부한 것만으로는 제약계를 끌어나갈 수 없었던 까닭에 점차 현대의약품인 신약(新藥)을 미국·영국·스위스·독일 등에서 수입하여 판매하는 약업회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선구적 존재가 유일한(柳一韓)의 유한양행(柳韓洋行)이었으며, 수없이 많은 품목에서 성공한 가운데 인류 최초의 화학요법제(化學療法劑)인 프론토질을 일본보다 앞서서 도입하여 제조한 것은 탁월한 선견지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화학요법제를 국내에서 합성한 제약회사의 효시가 1929년 전용순(全用淳)에 의하여 설립된 금강제약사(金剛製藥社)이며, 스스로의 연구진을 동원하여 606호라고 불리던 매독특효약이던 살바르산을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일본 통치하의 우리 제약계는 크게 발전을 못하고 명맥을 이어오다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은 세계수준의 제약공업국가로 발전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의 개발에 의해서 이룩된 약품이 과연 무엇인가. 이제부터는 우리가 창제(創製)한 약이 세계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또한 세종의 향약정책의 뜻을 오늘날 되살리는 것도 과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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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藥業史」(洪鉉五, 藥業新聞社,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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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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