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익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비변사낭청, 구성부사,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5년(숙종 11)
사망 연도
1722년(경종 2)
본관
제주(濟州)
주요 관직
비변사낭청|구성부사|병조참판
정의
조선후기 비변사낭청, 구성부사,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제주(濟州). 증참판 양일남(梁一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사 양우급(梁禹及)이며, 아버지는 양징(梁澂)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감찰 이구성(李九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기질이 영준하고 성격이 호탕하여 거치는 것이 없었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당쟁으로 안정을 잃은 정치 때문에 중용되지 못하여 술과 잡기로 울분을 달래다가, 그 고을의 군수를 구타하는 등 행패를 부려 토호무단율(土豪武斷律)에 의하여 관서지방에 유배되었다. 1717년(숙종 43)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건의로 왕명에 의하여 특사되었다.

이듬해 비변사낭청에 임명되었고, 1720년 숙종의 국상 때는 고부사(告訃使) 이이명(李頤命)의 무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구성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이몽인(李夢寅)과 함께 노론측 입장에서 왕세제(王世弟: 뒤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상소하였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천현에 유배되었다.

1722년 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왔으나 노론 4대신의 처형과 동시에 해를 입었다. 1724년(영조 즉위년) 노론 4대신의 복작과 동시에 신원되고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구성부사량공실기(龜城府使梁公實紀)』
『지산문집(志山文集)』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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