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7년(태종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현재의 서본리에 창건되었다. 1418년에 군수 김겸(金謙)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656년(효종 7) 군수 심유행(沈儒行)이, 1658년 군수 이휘조(李徽祚)가 각각 중수하였다.
현재 동재(東齋)·서재(西齋)·동무(東廡)·서무(西廡)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7칸의 명륜당, 동소문(東小門)·묘남문(廟南門)·주사(厨舍)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