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예문관제학, 판의금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문경(文卿)
순암(醇庵), 우불급재(愚不及齋)
시호
문정(文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27년(영조 3)
사망 연도
1792년(정조 16)
본관
해주(海州)
주요 관직
이조판서|홍문관대제학|예문관제학|판의금부사|판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에, 예문관제학, 판의금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경(文卿), 호는 순암(醇庵) 또는 우불급재(愚不及齋). 공조판서 오두인(吳斗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진주(吳晋周)이고, 아버지는 대제학 오원(吳瑗)이다. 어머니는 강릉최씨로, 최석(崔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음보로 관직에 나아가 세자익위사세마를 지냈으며, 1755년(영조 31) 할머니인 명안공주(明安公主: 현종의 딸)의 손자라는 배려를 받아 특명으로 6품에 올랐다. 도사에 이르렀으나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다가 177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승지를 거쳐, 부제학(副提學)·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783년(정조 7) 문안사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직제학(直提學)이 되었다. 이어 홍문관·예문관의 대제학을 지냈으며, 1790년에는 이조판서에 올랐다. 그뒤 홍문관대제학·예문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791년(정조 15)에는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같은 해 이조판서로 홍문관제학을 겸하였으며, 임시 수어사로 유진(留陣: 진지에 머무름)하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 판중추부사로 옮겼으나 그해 12월 재직 중에 사망하였다. 학문에 뛰어나 제자백가에 두루 통하였고, 특히 『주역』에 뛰어났다.

정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문형(文衡: 대제학)과 전조(銓曹: 吏曹와 兵曹의 통칭)를 맡았다. 왕은 오재순의 겸손하고 과묵함을 가상히 여겨, ‘우불급재란’ 호를 내리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는 『주역회지(周易會旨)』·『완역수언(玩易隨言聖學圖)』·『순암집(醇庵集)』 등이 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전고대방(典故大方)』
『노주집(老洲集)』
집필자
이문기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