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중에 소실되었다가 그뒤 중건되었다. 1954년에 유림총회에서 황폐한 향교 재건을 결의하고 1961년에 복원하였으며, 1966년과 1974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10철(十哲)·송조6현(宋朝六賢)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1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소장도서는 판본 15종 58책, 사본 11종 26책이 있으며, 이 중 『유안(儒案)』·『청금록(靑襟錄)』·『청금속록(靑襟續錄)』·『선안(仙案)』·『교안(校案)』·『향교중수사실(鄕校重修事實)』 등은 조선 후기 향교연구와 이 고장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