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며 이를 주도했던 정조(鄭造)의 처형을 주장한 학자.
이칭
응림(應霖)
청헌(淸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8년(선조 1)
사망 연도
1639년(인조 17)
본관
문화(文化, 지금의 황해도 신천)
정의
조선 후기에,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며 이를 주도했던 정조(鄭造)의 처형을 주장한 학자.
개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응림(應霖). 호는 청헌(淸軒). 서산(西山) 유자미(柳自湄)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유중번(柳重蕃)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고 공부를 늦게 시작하였으나, 곧 학업을 크게 성취하여 기재(奇才)라는 평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이첨(李爾瞻)과 정인홍(鄭仁弘) 등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감히 입궐, 상소하여 폐모론에 반대하고, 그것을 전면에서 주장하던 정조(鄭造)의 처형을 주장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는 가솔을 데리고 영남으로 내려가 살다가 진주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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