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임중(任重), 호는 송파(松坡). 윤태운(尹泰雲)의 아들이며, 아들 윤제세(尹濟世)와 더불어 영변지방에서는 대학자로 알려졌다.
태어나면서부터 신체가 장대하고 여력(膂力)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말을 잘 탔다. 처음 무과에 응시하고자 십팔반 무예를 습득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뒤에 무술이란 한 사람을 상대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일임을 깨닫고 무예를 버리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구경(九經)을 비롯하여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고금의 치란과 지방과 시대의 국도와 역사적 인물 등에 통달하였다. 특히,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인간의 구성 자체가 이(理)와 기(氣)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천문·지리·복서(卜筮) 등을 통하여 다가올 미래사를 예찰하였고, 『대학』의 성경(誠敬)과 격물치지(格物致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였다.
학행으로 묘동권관(廟洞權管)으로 천거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부임하지 않았다. 집 뒤에 강당을 지어서 후진들을 교육하여 학문의 불모지로 알려진 영변에 문풍을 크게 진작하였다. 뒤에 주민들에 의하여 영변의 남악사(南岳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