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의 ()

유교
인물
조선 전기에, 율봉도찰방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한 학자.
이칭
의지(義之)
율정(栗亭)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광주(廣州)
출생지
미상
정의
조선 전기에, 율봉도찰방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한 학자.
개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의지(義之), 호는 율정(栗亭). 성리학을 비롯, 천문·지리·기상·역학 등의 일반과학 분야까지 전심하여 각기 일가를 이루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진사에 합격하고 여러 번 대과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였다. 당시 진사의 위차가 생원의 아래에 있어 나이 많은 진사도 젊은 생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폐단을 시정하기 위하여 예조에 고쳐줄 것을 상계(上啓)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향리에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1483년(성종 14) 성종이 경서에 밝고 품행이 방정한 인물을 널리 구할 때 손순효(孫舜孝)의 추천을 받아 경연(經筵)에서 『대학』과 『중용』을 강론하였다.

서거정(徐居正)·허종(許琮) 등의 석학은 물론, 성종도 그의 고매한 품위와 박식에 탄복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 이 때 성종이 높이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나이를 핑계로 거절하였다. 이천의 설봉서원(雪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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