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현 ()

국방
인물
해방 이후 베트남에서 짜빈둥전투에 참전한 군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5년
사망 연도
1967년
출생지
충청남도 연기군
관련 사건
베트남 짜빈둥전투
정의
해방 이후 베트남에서 짜빈둥전투에 참전한 군인.
개설

충청남도 연기군 등면 문주리 167 출신. 1967년 2월 15일 베트남 짜빈둥전투에서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으로 분대장을 위기에서 구한 후 전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학현일병은 1967년 2월 15일 베트남 짜빈둥전투에 해병 제2여단 3대대 11중대 3소대 1분대 1조장으로 참전하였다. 그는 적의 2개대대 공격에 크레모아 발사 및 소화기 사격으로 대응하였다. 그래도 적은 시체를 방패삼아 약 30명이 전방 45미터까지 접근하여 기어 들어왔다.

이학현 일병은 조원을 격려하며 자기 위치를 고수하라고 하였다. 자신은 조원의 사기를 올리기 위하여 일어서서 사격을 하였다. 적 4명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자신도 왼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었다.

부상한 몸을 이끈채 계속해서 오물장에 빠져서 허덕이는 적 5명을 또 다시 사살하였다. 이 때 분대장을 향하여 접근하는 적 5∼6명을 확인하였다. 순간 수류탄을 투척 적을 사살하여 분대장을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그러나 자신도 오른쪽 발목에 관통상을 입어 거동할 수가 없었다.

진지내에서는 백병전이 전개되었다. 이학현 일병은 토끼굴에 피신하라는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무덤은 여기다. 내가 죽기전 저 놈들을 더 죽이겠다”고 외칠 뿐이었다. 육박전이 병력수에 밀려 어렵게 되자 이학현 일병은 수류탄을 양손에 까들고 적 5명과 함께 자폭하였다. 전사후 상병으로 추서되었으며, 1967년 4월 16일 을지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파월 한국군 전사』제2권(국방부, 1981)
『해병전투사 3집 월남편』 2권
『대한일보』(1967.3.25)
『해병주보』(1967.3.24)
집필자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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