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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구(李憲球)

조선시대사인물

 조선후기 공조판서,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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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공조판서,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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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서(稚瑞), 호는 국간(菊幹). 좌의정 이건명(李健命)의 현손이며, 이면지(李勉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철상(李徹祥)이고, 아버지는 이장현(李章顯)이며, 어머니는 김치온(金致溫)의 딸이다. 청검(淸儉)하며 근면하기로 이름났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814년(순조 14)에 진사가 되고, 1816년(순조 1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29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그 뒤 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836년(헌종 2)에 이조참판에 올랐다.
이듬해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고, 1841년 한성부판윤·공조판서·대사헌을, 이듬해 형조판서·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한편 그 해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되어 의주를 비롯한 여러 산성에 군량을 비축하도록 하였고, 별무시(別武試)를 실시하였다.
1844년 사헌부대사헌으로 김유근(金逌根)·김홍근(金弘根)의 추죄를 주장하다가 덕원부에 유배, 이듬해 석방되어 사은 겸 동지정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7년 형조판서·대사헌·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1849년(철종 즉위년) 이조판서, 이듬해 예조판서·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으며, 1852년 우의정에 올랐다. 그 때 나이 69세로 치사(致仕)하기를 연이어 간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으며 바로 좌의정이 되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판중추부사·광주유수(廣州留守)를 역임하는 등 치정(治政)에 힘썼다. 70세가 되어 국가로부터 궤장(几杖)을 수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원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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