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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왕후(仁宣王后)

조선시대사인물

 조선후기 제17대 효종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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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조선 효종과 인선왕후 영릉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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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제17대 효종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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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덕수(德水). 우의정 장유(張維)의 딸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봉림대군(鳳林大君)의 부인으로 간택되어 다음해에 가례를 올리고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으로 봉하여졌다.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이 심양(瀋陽)에 인질로 갈 때 따라가 8년간이나 머물면서 많은 뒷바라지를 하였다.
1645년 소현세자가 죽으면서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이 되었으나, 책봉을 제때 받지 못하여 사저(私邸)에서 넷째 딸(숙정공주)을 낳게 되었다. 그 뒤 책봉되어 1649년 효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고, 2년 뒤 정식으로 책명을 받았다.
1661년(현종 2) 효숙(孝肅)의 존호를 받아 왕대비로 있다가 1674년 질병을 얻어 오래 신고(辛苦)하다 회상전(會祥殿)에서 죽었다.
이 때 그녀의 시어머니인 인조비 조대비(趙大妃)가 어떤 복(服)을 입느냐 하는 예송(禮訟)이 일어나, 기년복(朞年服)·대공복(大功服)을 둘러싸고 송시열(宋時烈)과 윤휴(尹鑴)의 대립이 크게 일어났다.
소생은 1남 5녀로 현종과, 숙안(淑安)·숙명(淑明)·숙휘(淑徽)·숙정(淑靜)·숙경(淑敬) 등 공주이다. 경렬명헌(敬烈明獻)의 휘호(徽號)가 올려졌다. 시호는 효숙경렬명헌인선왕후(孝肅敬烈明獻仁宣王后)이고, 능호는 영릉(寧陵)으로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왕대리)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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