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인 ()

고전시가
인물
조선전기 통례문통찬, 사간원헌납,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이칭
가택(可宅)
불우헌(不憂軒), 다각(茶角)
이칭
다헌(茶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01년(태종 1)
사망 연도
1481년(성종 12)
본관
영성(靈城)
출생지
광주
주요 관직
사간원헌납|사간원정언
정의
조선전기 통례문통찬, 사간원헌납,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개설

본관은 영성(靈城). 광주(廣州) 출신. 자는 가택(可宅), 호는 불우헌(不憂軒) · 다헌(茶軒) · 다각(茶角). 아버지는 진사 정곤(丁坤)이다. 한편, 『국조방목(國朝榜目)』에는 정인(丁寅)의 아들로 되어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29년(세종 11) 생원이 된 후 여러 번 과시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1437년(세종 19) 세종흥천사(興天寺)를 중건하기 위하여 토목공사를 일으키자 주1을 이끌고 부당함을 항소하다가 왕의 진노를 사 북도(北道)로 귀양을 갔다.

그 뒤 풀려나 태인(泰仁)으로 가 집을 짓고 거처하며 집의 이름을 불우헌이라고 지었다. 불우헌 앞 비수천(泌水川) 주변에 송죽을 심고 밭을 갈아 양성을 힘쓰면서 향리의 자제들을 모아 가르치는 한편으로 향약(鄕約)계축(契軸)[^4]을 만들어 향리의 교화에 힘썼다. 한편, 정극인은 원래 광주(廣州) 두모포리 태생인데, 처가가 태인인 까닭으로 이곳에 우거하게 된 것이다. 송세림(宋世琳)의 「동중향음주서(洞中鄕飮酒序)」 발문에도 애초의 태인 사람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다.

1451년(문종 1) 천거로 광흥창부승(廣興倉副丞)이 되어 6품(六品)을 받았다. 이어 인수부승(仁壽府丞)으로 있다가 1453년(단종 1) 한성판관 성순조(成順祖)의 권유로 전시(殿試)에 응시하여 김수령방(金壽寧榜) 정과(丁科) 13명에 들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전주부교수참진사(全州府敎授參賑事)로 있다가 그 직을 사임하고 태인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 해 12월 조정에서는 인순부승록(仁順府丞錄)으로서 좌익원종공권(佐翼原從功券) 4등을 내렸다. 이로부터 다시 출사하여 약 10년간, 네 번의 성균관주부, 두 번의 종학박사(宗學博士)를 지냈고, 사헌부감찰 및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 등을 역임했다.

1469년(예종 원년) 69세 때 태인현 훈도로 있다가 사간원헌납으로 다시 옮겨 조산대부 행사간원정언(朝散大夫行司諫院正言)이 되었다. 또 불교를 배척하는 논의를 하다가 하옥되기도 했으나 오래지 않아 석방됐다.

1470년(성종 1)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관직을 사양하고 귀향해 후진을 양성했다. 1472년 벼슬에 뜻을 접고 향리의 자제를 열심히 가르친 공으로 3품 산관(散官)이 내려지자 이에 감격해 「불우헌가(不憂軒歌)」 · 「불우헌곡(不憂軒曲)」을 지어 주2했다. 1481(성종 12)년 81세의 나이로 죽었다.

비록 주3의 영달은 없었으나 선비로서의 청렴한 삶을 고수했고, 검소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문학에 특출한 재능을 보여 최초의 가사 작품으로 알려진 「상춘곡」단가(短歌) 「불우헌가」, 경기체가(景幾體歌)의 「불우헌곡」 등을 지어 한국시가사에 공헌했다. 특히 「불우헌가」 · 「불우헌곡」은 모두 우리말을 사용하여 지음으로써 국문학사에 큰 의미가 있다.

문집으로 『불우헌집(不憂軒集)』2권 1책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예조판서 겸 지춘추관성균관사에 주5됐으며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 주6됐다.

참고문헌

『한국 가사문학의 이해』(정재호,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호남가단연구』(정익섭, 진명문화사, 1975)
『국문학전사』(이병기·백철 공저, 신구문화사, 1957)
『한국시가사강』(조윤제, 을유문화사, 1954)
「상춘곡과 그 소수문헌 불우헌집을 살핌」(최강현, 『가사문학론』, 새문사, 1986)
「불우헌가곡연구」(권영철, 『국문학연구』2, 효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연구실, 1969)
「임란전후 가사 연구」(김동욱, 『진단학보』25·26·27 합병호, 1964)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성균관에서 기거하며 공부하던 유생. 주로 장의(掌議) 이하 생원과 진사를 통틀어 이른다. 우리말샘

주2

경사를 기리고 축하함. 우리말샘

주3

벼슬아치 노릇을 하는 길. 우리말샘

주4

환갑 따위를 맞은 사람에게 뜻있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잔치를 베풀면서 시부를 적어 선물로 주는 권축. 우리말샘

주5

나중에 더 보탬. 우리말샘

주6

공신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정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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