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자중(子重), 호는 사월(沙月). 아버지는 증한성부판윤(贈漢城府判尹) 조광인(趙光仁)이며, 어머니는 광주안씨(廣州安氏)로 충순위(忠順衛) 안수인(安壽仁)의 딸이다.
유년시절부터 충신열사들의 전기(傳記)를 탐독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20세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형과 함께 곽재우(郭再祐)의 휘하(揮下)에서 적과 싸웠으며, 1597년 의병이 해산될 때 곽재우가 조임에게 사월(沙月)이란 호를 지어주면서 조임의 의로운 행동을 극구 칭찬하였다.
1614년(광해군 5)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1621년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오운(吳澐)·이준(李埈)·신지제(申之悌)·홍위(洪瑋) 등과 폭넓게 교유하였으며, 향리(鄕里)에서 실천적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관찰사(觀察使)를 방문하여 사재를 털어주면서 군량미(軍糧米)를 보충하게 하였으며, 후에 이 일로 인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임명되고 삼대(三代)가 추증(追贈)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칠십이 가까운 나이로 전쟁에 직접 참가하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집 뒷뜰에 축단(祝壇)을 쌓고 밤낮으로 난이 평정되기를 빌었다. 한편, 그런 와중에서도 영산서당(英山書堂)에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화의(和議)를 극력하게 배척하는 「척화소 斥和疏」를 짓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사월문집(沙月文集)』 2권 1책이 있다.